누가복음 1:1-80
연구 노트
누가: “누가”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이 이름은 라틴어 루카스(Lucas)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어 형태로 표기하면 루카스(Λουκᾶς)이다. 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으며 사도 바울의 충실한 동료였다. (골 4:14. “누가복음 소개” 참조) 누가라는 그리스어 이름과 그의 문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누가가 유대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골 4:10-14에서 바울이 “할례받은 사람들”을 먼저 언급하고 그다음에 누가를 언급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롬 3:1, 2에서 알려 주는 바와 상충된다. 그 구절에서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신성한 선언을 맡았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누가는 그리스어 이름을 가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복음서 필자 중 아무도 자신들의 기록에 이러한 제목을 붙여 자신이 필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복음서 원문에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누가복음의 사본 중에는 제목이 유앙겔리온 카타 루칸(“누가에 의한 좋은 소식[또는 “복음”]”)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짧은 형태인 카타 루칸(“누가에 의한”)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제목들이 어느 시점에 붙여졌는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시기를 기원 2세기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긴 형태의 제목이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에 만들어진 복음서 사본들에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마가복음의 처음에 나오는 말(“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의 시작”) 때문에 “복음”(“좋은 소식”이라는 의미)이라는 단어가 사복음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필자의 이름을 넣은 이러한 제목들을 사용한 것은 이 책들을 쉽게 구분하여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온전히 믿는: 이 그리스어 표현은 사실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이 표현과 우리가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된 것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온전히 확신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다른 문맥에서는 이 그리스어 단어의 변화형이 “온전히 확신하다”, “온전한 확신을 갖다” 또는 “굳은 확신을 갖다”로 번역되었다.—롬 4:21; 14:5; 골 4:12.
말씀의 종: 또는 “말씀의 시중드는 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두 번역판(부록 다에 J18, 22로 표기됨)은 이 부분에 테트라그람마톤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의 말씀의 종”이 된다.
존귀한: “존귀한”으로 번역된 그리스어(크라티스토스)는 고위 관리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서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행 23:26; 24:3; 26:25)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데오빌로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 그리스어 단어가 단지 다른 사람을 친근하게 또는 정중하게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거나 깊은 존중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데오빌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봉사에 대해 이미 ‘들어서 배웠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그리스도인이었던 것 같다. (눅 1:4) 그는 자신이 이전에 들어서 배운 것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누가의 기록을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견해가 모두 일치한 것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데오빌로가 처음에는 관심자였다가 나중에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벗”이라는 의미의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그리스도인 전체를 지칭하는 일종의 가명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의 시작 부분에서는 누가가 데오빌로를 부를 때 “존귀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행 1:1.
조사했기: 또는 “면밀히 살폈기”. 누가가 복음서에 기록한 사건들은 그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누가는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에 더해, 다음과 같은 자료를 근거로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이다. (1) 예수의 족보를 위해 참고한 당시 구할 수 있었던 기록들. (눅 3:23-38) (2) 마태의 영감받은 기록. (3) 많은 목격 증인들과 나눈 대화. (눅 1:2) 그런 목격 증인들 가운데는 그때까지 살아 있던 제자들이 있었으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거의 60퍼센트는 다른 복음서들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누가복음 소개” 참조.
논리적인 순서로: 또는 “차례대로”. “논리적인 순서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 카텍세스는 시간이나 주제, 논리의 순서를 따르는 것을 가리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엄격한 시간 순서를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눅 3:18-21을 보면 누가가 항상 시간 순서대로 사건들을 기록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생애와 봉사 중에 있었던 사건들의 순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네 복음서를 모두 조사할 필요가 있다. 누가는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사건들을 기록했지만, 사건들과 주제를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간 외에 다른 점들도 고려한 것 같다.
헤롯: 헤롯 대왕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참조.
아비야: “나의 아버지는 여호와”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아비야 조: 아비야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이었으며, 다윗왕 시대에 이스라엘의 한 가문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다윗은 제사장들을 24개 조로 나누어 각 조가 예루살렘에 있는 신성한 곳에서 6개월마다 한 주씩 봉사하게 했다. 아비야 가문은 여덟째 조를 이끌도록 제비뽑기를 통해 선택되었다. (대상 24:3-10) “아비야 조”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스가랴가 반드시 아비야의 후손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표현은 스가랴가 봉사하도록 임명된 제사장 조를 가리키는 것이다.—눅 1:9 연구 노트 참조.
스가랴: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이름의 그리스어 형태인 “사가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엘리사벳: 그리스어 이름 엘레이사베트는 “나의 하느님은 풍부하시다; 풍부함의 하느님”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인 엘리셰바(엘리세바)에서 유래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 따라서 요한의 부모는 둘 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다.
여호와: 「신세계역」의 누가복음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이다.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키리오스(주)가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라는 칭호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부록 다1 및 다3 소개; 눅 1:6 참조) 누가복음의 처음 두 장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들이나 구절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계명과 법적 요구 조건이나 그와 비슷하게 법률 용어들을 조합한 표현들이 히브리어 성경에도 나오는데, 그러한 표현들은 하느님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여호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문맥들에서 주로 사용되었다.—창 26:2, 5; 민 36:13; 신 4:40; 27:10; 겔 36:23, 27.
그가 분향할 순서가 되어: 처음에는 대제사장 아론이 금제단에 향을 피웠다. (출 30:7) 하지만 향과 그 밖의 장막 물품을 관리할 책임은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주어졌다. (민 4:16) 이 구절에서는 보조 제사장인 스가랴가 분향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따라서 속죄일이 아닌 때에는, 분향하는 일이 대제사장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분향하는 일은 성전에서 날마다 행해지는 봉사 가운데 가장 영예롭게 여겨지는 봉사였을 것이다. 이 일은 희생 제물을 바친 뒤에 행해졌으며, 분향하는 동안 백성은 신성한 곳 밖에 모여 기도하곤 했다. 랍비 전승에 따르면, 누가 이 봉사를 할지 제비를 뽑아서 결정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제사장 중에 이 봉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경우, 이전에 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제사장은 분향하는 일을 하는 영예를 평생 단 한 번밖에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신성한 곳: 눅 1:6 연구 노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누가복음의 처음 두 장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들이나 구절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신성한 곳[또는 “성전”]”에 해당하는 표현이 히브리어 성경에 나올 경우, 종종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된다. (민 19:20; 왕하 18:16; 23:4; 24:13; 대하 26:16; 27:2; 렘 24:1; 겔 8:16; 학 2:15) 부록 다1에서 알려 주듯이,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라는 칭호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따라서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부록 다3 소개; 눅 1:9 참조.
신성한 곳: 여기서 그리스어 원어 나오스는 성전의 중앙 건물을 가리킨다. 스가랴가 “분향할 순서”가 되자, 그는 신성한 곳의 첫 번째 칸인 성소에 들어갔다. 분향 제단은 그곳에 놓여 있었다.—마 27:5; 27:51 및 부록 나11 참조.
여호와의 천사: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천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형태로 자주 등장하며, 창 16:7에 처음 나온다. 이 표현은 슥 3:5, 6에도 나오는데, 「칠십인역」의 한 초기 사본에서 그 구절을 보면, 그리스어 앙겔로스(천사; 사자) 다음에 히브리어 글자로 된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그 「칠십인역」 단편은 이스라엘 유대 사막의 나할헤베르에 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50년에서 기원 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눅 1:11의 이 부분이 “주의 천사”로 되어 있지만, 「신세계역」 본문에서 “여호와의 천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1과 다3에 설명되어 있다.
요한: 마 3:1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보시기에: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표현이 에노피온 키리우(직역하면 “주께서 보시는 데서; 주 앞에서”)로 되어 있다. 에노피온 키리우는 히브리어 관용구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에 100회 이상 나오는데, 이 표현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된 히브리어 문구들을 번역한 것이다. (삿 11:11; 삼상 10:19; 삼하 5:3; 6:5) 이 표현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보면, 이 구절에 원래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키리오스(주)로 대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부록 다3 소개; 눅 1:15 참조.
여호와: 천사가 스가랴에게 한 말(13-17절)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용되는 표현들과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어, 키리오스(주)와 테오스(하느님)와 인칭 대명사를 함께 사용한 표현(여기서는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로 번역됨)은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한 부분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눅 4:8, 12; 10:27에 나오는 “너의 하느님 여호와”와 비교)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들의(또는 “자기들의”) 하느님 여호와”라는 표현이 30회 이상 나오는 반면, “그들의 하느님 주”와 같은 표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직역하면 “이스라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 역시 히브리어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히브리어 관용구를 가져온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 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의미한다.—창 36:31; 각주. 부록 다3 소개; 눅 1:16 참조.
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 돌아오게 하여: 말 4:6의 예언을 인용한 이 표현은 아버지들과 자녀들이 화해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요한이 전하는 소식이 아버지들의 단단한 마음을 순종하는 자녀들처럼 겸손하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변화시켜 회개하게 만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었다. 그와 비슷하게, 말라기는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도 예언했는데, 이것은 회개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충실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를 위해 준비된 백성을 마련할 것입니다: 천사가 스가랴에게 한 말(13-17절)에는 말 3:1; 4:5, 6; 사 40:3과 같은 구절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그 구절들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눅 1:15, 16 연구 노트 참조) 백성을 마련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과 유사한 표현이 「칠십인역」의 삼하 7:24에 나오는데,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 굳게 세우셨습니다. 여호와여”로 되어 있다.—부록 다3 소개; 눅 1:17 참조.
가브리엘: “하느님의 강건한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름. (단 8:15, 16) 가브리엘은 성경에서 미가엘 외에 이름이 언급된 유일한 천사이며, 물질화한 천사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밝힌 유일한 천사이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유앙겔리조마이는 “좋은 소식”을 의미하는 명사 유앙겔리온과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 천사 가브리엘은 복음 전파자 즉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마 4:23; 24:14; 26:13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한 봉사: 또는 “공적 봉사”.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레이투르기아인데,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로는 레이투르게오(공적 봉사를 행하다)와 레이투르고스(공적 봉사자; 공복)가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 단어들을 국가나 행정 당국을 위해 수행되며 일반 대중에게 유익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나 봉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롬 13:6(각주)에서는 세속 권위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봉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공복”(레이투르고스의 복수형)이라고 불린다. 이 구절에서 누가가 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칠십인역」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비슷한데, 「칠십인역」에서는 이 단어의 동사형과 명사형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수행하는 성전 봉사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출 28:35; 민 8:22) 성전에서 수행되던 봉사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공적 봉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봉사에는 거룩함이라는 개념도 들어 있었는데, 레위 제사장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의 죄를 덮는 희생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다.—대하 15:3; 말 2:7.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셨구나: 또는 “여호와께서 나를 이렇게 대해 주셨구나”. 여기서 엘리사벳이 감사를 표현한 말은 창 21:1에서 사라의 경험을 묘사한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구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자녀를 갖지 못하는 치욕을 하느님께서 없애 주셨다는 엘리사벳의 말은 창 30:23에 기록된 라헬의 말과 비슷하다.—부록 다1 및 다3 소개; 눅 1:25 참조.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째 달에: 직역하면 “여섯째 달에”. 24절과 25절을 보면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째 달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약혼한: 마 1:18 연구 노트 참조.
마리아: 히브리어 이름 “미리암”에서 유래한 이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섯 명의 여자가 나온다. (1)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2) 막달라 마리아. (마 27:56; 눅 8:2; 24:10) (3)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마 27:56; 눅 24:10) (4) 마르다의 자매이자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 (눅 10:39; 요 11:1) (5)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행 12:12) (6) 로마의 마리아. (롬 16:6) 예수 시대에 마리아는 매우 흔한 여자 이름이었다.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포함된 이 표현이나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히브리어 성경에 자주 나온다. (룻 2:4; 삼하 7:3; 대하 15:2; 렘 1:19)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은 삿 6:12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한 다음과 같은 인사말과 비슷하다. “너 강한 전사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부록 다1 및 다3 소개; 눅 1:28 참조.
예수: 마 1:21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하느님: 눅 1:6 연구 노트에서 설명한 것처럼, 누가복음의 처음 두 장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들이나 구절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다윗의 왕좌에 관한 천사의 말은 삼하 7:12, 13, 16에 나오는 약속을 암시적으로 언급한 것인데, 그 구절들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며, 그 구절들의 문맥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여러 차례 나온다. (삼하 7:4-16) 이 구절에서 “여호와 하느님”으로 번역된 표현이나 그와 비슷한 조합의 표현들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주로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한 구절이나 히브리어식으로 표현된 구절들에 나온다.—눅 1:16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눅 1:32 참조.
당신의 친족: 이 그리스어 단어는 이 구절에 사용된 형태(싱게니스)로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단 한 번 나오지만, 다른 형태(싱게네스)로는 여러 차례 나온다. (눅 1:58; 21:16; 행 10:24; 롬 9:3) 두 표현 모두 일반적인 의미의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서로 친족 관계였지만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스가랴와 엘리사벳은 레위 지파였고 요셉과 마리아는 유다 지파였으므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가까운 친족은 아니었을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에는 불가능이 없기: 달리 번역하면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여기서 “말씀하신 것”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 레마는 “말; 선언”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말로 묘사된 “일” 즉 사건이나 행동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의미는 동일하다. 하느님께는 또는 그분의 모든 약속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 구절에 사용된 표현은 「칠십인역」 창 18:14의 표현과 비슷하다. 그 구절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노년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저는 여호와의 여종입니다!: 마리아는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의 다른 종들이 한 말과 비슷한 말을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삼상 1:11에 기록된 한나의 기도에는 “만군의 여호와여, 이 종[또는 “당신의 여종”]의 괴로움을 보시고”라는 말이 들어 있다. 「칠십인역」은 삼상 1:11을 번역할 때, 누가복음에서 “여종”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다.—부록 다3 소개; 눅 1:38 참조.
산간 지방으로 가서: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에서 유다 구릉성 산지까지 가는 데는 스가랴와 엘리사벳이 살던 도시가 어디였는지에 따라 3일에서 4일 정도가 걸렸을 것이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100킬로미터 이상이었을 수 있다.
당신의 태의 열매: 또는 “당신의 태 속의 아이”. 이 구절에서 “열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카르포스)는 “태”로 번역된 단어와 함께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자손을 인간의 생식 작용의 산물 즉 “열매”로 부르는 히브리어 관용구를 가져온 것이다.—창 30:2, 각주; 신 7:13, 각주; 28:4, 각주; 시 127:3; 132:11, 각주; 사 13:18; 애 2:20, 각주.
여호와께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은 여호와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라 키리우는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파라 키리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 표현들에는 대개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창 24:50; 삿 14:4; 삼상 1:20; 사 21:10; 렘 11:1; 18:1; 21:1. 부록 다3 소개; 눅 1:45 참조.
그러자 마리아가 말했다: 46-55절에서 마리아는 여호와를 찬양하면서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20회 이상 언급한다. 마리아가 사용한 표현의 많은 부분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한 말과 비슷한데, 한나도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여호와로부터 자녀를 낳는 축복을 받은 여자였다. (삼상 2:1-10) 그 외에도 마리아가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을 직접적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한 예들을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시 35:9; 합 3:18; 사 61:10 (47절); 창 30:13; 말 3:12 (48절); 신 10:21; 시 111:9 (49절); 욥 12:19 (52절); 시 107:9 (53절); 사 41:8, 9; 시 98:3 (54절); 미 7:20; 사 41:8; 삼하 22:51 (55절). 마리아가 한 말을 보면 그가 영적인 사람이었고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었으며 감사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거만하고 권세 있는 자들을 낮추시며 자신을 섬기려고 애쓰는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도우신다는 표현을 보면, 마리아의 믿음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영혼: 또는 “내 전부”. 그리스어 프시케는 종종 “영혼”으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어떤 사람의 전체를 가리킨다. 이 문맥에서 “내 영혼”은 “나”라고 옮길 수도 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내 영혼이 여호와를 드높이며: 또는 “내 영혼이 여호와의 위대함을 찬양하며(선포하며)”. 마리아의 이 말은 시 34:3이나 69:30과 같은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에 나오는 표현과 비슷한데, 그 성구들이나 문맥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시 69:31) 「칠십인역」은 이 히브리어 성구들에서 “드높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그리스어 메갈리노를 사용하는데, 그 단어는 이 구절(눅 1:46)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와 동일한 단어이다.—이 구절에 나오는 그러자 마리아가 말했다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눅 1:6, 25, 38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눅 1:46 참조.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크게 나타내셨다는: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의 표현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창 19:18-20에는 롯이 여호와께 말씀드릴 때 사용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여호와여, ··· 주께서 ··· 제게 큰 친절을 보이셨습니다[직역하면 “제게 친절을 크게 나타내셨습니다”].”—부록 다3 소개; 눅 1:58 참조.
여호와의 손: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형태로 자주 나온다. (출 9:3; 민 11:23; 삿 2:15; 룻 1:13; 삼상 5:6, 9; 7:13; 12:15; 왕상 18:46; 라 7:6; 욥 12:9; 사 19:16; 40:2; 겔 1:3) “여호와의 손”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행 11:21; 13:11에도 나온다.—눅 1:6, 9; 행 11:21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눅 1:66 참조.
손: 이 단어는 “힘; 능력”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손은 팔의 힘이 발휘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손”이라는 단어는 “발휘되는 힘 또는 능력”이라는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다.
여호와는 찬양받으실 분입니다: 또는 “여호와는 찬송받으실 분입니다”. 이 찬양의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하느님의 이름과 함께 자주 사용된다.—삼상 25:32; 왕상 1:48; 8:15; 시 41:13; 72:18; 106:48. 부록 다3 소개; 눅 1:68 참조.
구원의 뿔: 또는 “강력한 구원자”. 성경에서 동물의 뿔은 흔히 힘, 정복, 승리를 상징한다. (삼상 2:1; 시 75:4, 5, 10; 148:14 및 각 구절의 각주 참조) 또한 뿔은 의로운지 악한지에 관계없이 통치자 혹은 왕조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그들의 정복 행위는 뿔로 밀어붙이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신 33:17; 단 7:24; 8:2-10, 20-24) 이 문맥에서 “구원의 뿔”이라는 표현은 구원할 능력을 가진 자, 위력 있는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뿔” 참조.
그분에게 신성한 봉사를 드리는: 또는 “그분을 숭배하는”. 그리스어 동사 라트류오의 기본 의미는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이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을 섬기거나 그분의 숭배와 관련이 있는 봉사를 하는 것, (마 4:10; 눅 2:37; 4:8; 행 7:7; 롬 1:9; 빌 3:3; 딤후 1:3; 히 9:14; 12:28; 계 7:15; 22:3) 또는 신성한 곳이나 성전에서 봉사를 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히 8:5; 9:9; 10:2; 13:10) 따라서 일부 문맥에서는 이 단어를 “숭배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몇몇 경우에는 이 단어가 거짓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어, 피조물을 위해 봉사하거나 그것을 숭배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행 7:42; 롬 1:25.
너는 여호와보다 앞서 가서: 침례자 요한이 “여호와보다 앞서 간다”는 말은 하늘의 아버지를 대표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인 예수보다 요한이 앞서 가서 예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요 5:43; 8:29. 이 구절에 나오는 여호와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의 후반부에 나오는, 예언적 의미가 담긴 스가랴의 말은 사 40:3과 말 3:1에 나오는 표현과 유사한데, 그 구절들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눅 1:6, 16, 17; 3:4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눅 1:76 참조.
미디어
가능한 경우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된 사건들은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
1. 성전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스가랴에게 나타나 침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언하다 (눅 1:8, 11-13)
2. 예수가 태어난 뒤에, 천사들이 베들레헴 근처의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나타나다 (눅 2:8-11)
3. 예수가 열두 살 때 성전에서 교사들과 이야기하다 (눅 2:41-43, 46, 47)
4. 마귀가 예수를 “성전 흉벽 위에” 세우고 그분을 유혹하다 (마 4:5-7; 눅 4:9, 12, 13)
5.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읽으시다 (눅 4:16-19)
6. 예수께서 고향에서 배척받으시다 (눅 4:28-30)
7. 예수께서 나인으로 가시다. 아마도 가버나움에 계시다가 나인으로 가셨을 것이다 (눅 7:1, 11)
8. 예수께서 나인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부활시키시다 (눅 7:12-15)
9. 예수께서 두 번째 갈릴리 전파 여행을 하시다 (눅 8:1-3)
10. 아마도 가버나움에서,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부활시키시다 (마 9:23-25; 막 5:38, 41, 42; 눅 8:49, 50, 54, 55)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다 (눅 9:57, 58)
12. 아마도 유대에서, 예수께서 70명을 보내시다 (눅 10:1, 2)
13. 이웃다운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비유의 배경이 된 장소. 비유에서 그 사람은 예리코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눅 10:30, 33, 34, 36, 37)
14. 예수께서 페레아에 있는 도시와 마을에서 가르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 (눅 13:22)
15.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나병 환자 열 명을 고쳐 주시다 (눅 17:11-14)
16. 예수께서 예리코에서 세금 징수원 삭개오를 방문하시다 (눅 19:2-5)
17.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 (마 26:36, 39; 막 14:32, 35, 36; 눅 22:40-43)
18. 베드로가 가야바의 집 뜰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하다 (마 26:69-75; 막 14:66-72; 눅 22:55-62; 요 18:25-27)
19. ‘해골’(골고타)이라는 곳에서 예수께서 죄수에게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다 (눅 23:33, 42, 43)
20.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눅 24:13, 15, 16, 30-32)
21. 예수께서 제자들을 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시다. 그분이 근처에 있는 올리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다 (눅 24:50, 51)
이 영상은 스가랴가 성전 입구로 들어갈 때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헤롯이 지은 성전은 15층 높이였다. 앞문이 나 있는 건물 정면은 금이 입혀져 있었을 것이다. 입구가 동쪽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해가 떠오르면 햇빛을 반사해서 눈부시게 빛났을 것이다.
(1) 여인의 뜰
(2) 번제 제단
(3) 성소 입구
(4) 금속으로 주조한 바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기원 3세기나 4세기에 만들어진 심마쿠스의 그리스어 번역본의 양피지 단편으로, 시 69:30, 31(「칠십인역」으로는 시 68:31, 32)에 해당한다. 심마쿠스가 번역본을 처음으로 완성한 때는 기원 2세기이다. 이 단편은 P. 빈도보넨시스 그리스어 39777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그리스어 본문 가운데 고대 히브리어 문자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 또는 )이 두 번 나온다. 눅 1:46에 나오는 마리아의 말은 시 69:30, 31의 사상을 표현한 것일 수 있는데,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도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마리아의 찬양의 표현이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는 점과 심마쿠스의 그리스어 번역본에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눅 1:46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해 준다.—눅 1:46 연구 노트와 부록 다 참조.
스가랴가 히브리어로 “아이 이름은 요한입니다”라는 글을 쓸 때 사용한 판은 삽화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나무 판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서판은 여러 세기 동안 고대 중동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서판의 테두리 안쪽으로 살짝 들어간 면에는 밀랍이 얇게 발려 있었다. 그 부드러운 면에 철이나 청동이나 상아로 만든 첨필을 사용해 글을 쓸 수 있었다. 일반적인 첨필은 한쪽은 뾰족하고 반대쪽은 끌처럼 납작한 모양이었다. 납작한 쪽은 글씨를 지우거나 밀랍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두 개 이상의 판을 작은 가죽끈으로 함께 묶어 놓기도 했다. 사업가, 세금 징수원, 학생, 학자들은 어떤 기록을 임시로 보관할 때 서판을 사용했다. 사진에 나오는 서판은 기원 2세기나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