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전서 5:1-28

5  형제 여러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2  여호와의 날이+ 꼭 밤의 도둑같이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닥치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멸망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닥칠 것이며,+ 그들은 결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4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도둑에게 갑자기 날이 밝는 것처럼 그날이 여러분에게 갑자기 닥치지 않을 것입니다. 5  여러분은 모두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입니다.+ 우리는 밤에도 어둠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지 말고+ 깨어+ 정신을 차립시다.+ 7  자는 사람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사람들은 밤에 취합니다.+ 8  그러나 낮에 속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를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잠들어 있든지 자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하고 있는 그대로 계속 서로 격려하고 서로 세워 주십시오.+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열심히 일하고, 주 안에서 여러분을 주재하고, 여러분을 훈계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십시오. 13  그들이 하는 일 때문에 그들을 사랑으로 각별히 존중하십시오.+ 서로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14  또한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한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모든 사람에게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15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해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오히려 서로에 대해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 항상 선한 것을 추구하십시오.+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 대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19  영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  모든 것을 확인하고+ 훌륭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  온갖 형태의 악을 멀리하십시오.+ 2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때에 형제 여러분의 영과 영혼과 몸이 보존되어 나무랄 데 없고 모든 면에서 건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4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충실하시므로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25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인사하십시오. 27  나는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반드시 이 편지를 모든 형제에게 읽어 주십시오.+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이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각주

연구 노트

그 때와 시기: 행 1:7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의 날: 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적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시고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특별한 때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 사 13:6; 겔 7:19; 욜 1:15; 암 5:18; 옵 15; 습 1:14; 슥 14:1; 말 4:5) 예언자 요엘은 “여호와의 크고 외경스러운 날이 오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욜 2:31) 행 2:20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드로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 구절을 인용했다. (행 2:20 연구 노트 참조) 요엘의 예언의 첫 번째 성취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날”이 닥쳤다. 이 구절 즉 살전 5:2에서 바울은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는데, 그날은 예수께서 마 24:21에서 예언하신 “큰 환난”을 가리킨다.—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살전 5:2 참조.

밤의 도둑같이: 도둑은 대개 밤에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닥친다. (욥 24:14; 렘 49:9; 마 24:43) 그와 비슷하게 여호와의 날도 갑자기 닥쳐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이다. (벧후 3:10; 계 16:15)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라는 권고를 따른다. (눅 12:39; 계 3:3) 그들 역시 그날이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겠지만 (마 24:42-44; 눅 12:40) 아무 준비도 없이 그날을 맞지는 않을 것이다.—살전 5:4.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닥치는 것처럼: 진통은 갑자기 닥치며, 언제 닥칠지 정확한 날과 시간을 미리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비유는 오게 될 멸망이 갑작스러울 것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임신한 여자는 일단 진통이 시작되면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안다.—마 24:8 연구 노트 비교.

갑작스러운 멸망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닥칠 것이며: 바울은 여기서 “평화롭다, 안전하다”라는 선언이 이루어지는 시점과 그 선언을 하는 자들에게 멸망이 닥치는 시점 사이에 거의 간격이 없을 것임을 보여 준다. 그 멸망은 갑자기 닥칠 것이며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 그리스어 표현에 “갑작스러운”과 “순식간에”에 해당하는 단어들이 함께 사용된 것은 멸망이 놀라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닥칠 것임을 강조한다. 눅 21:34에서도 여호와의 날이 오는 것에 관해 묘사하면서 그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었다.

그들은 결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개의 부정어를 사용하여 (직역하면 “피하지 못할 못할”) 악한 자들이 “순식간에 그들에게 닥칠” “갑작스러운 멸망”을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도둑에게 갑자기 날이 밝는 것처럼: 살전 5:2에서 바울은 여호와의 날을 경고 없이 갑자기 닥치는 도둑에 비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비유의 대상을 바꾸어 여호와의 날을 새벽에 비한 것 같다. 새벽이 되어 날이 밝으면 어둠을 틈타 물건을 훔치던 도둑의 행동이 드러나게 된다. (욥 24:14; 요 3:20) 하지만 물건을 훔치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날이 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도둑에게는 아침이 “갑자기 닥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 도둑과는 달리 참그리스도인들은 밤에도 어둠에도 속해 있지 않은 “빛의 아들들”이 되어야 한다. (살전 5:5) 바울이 2절에서 사용한 비유와 4절에서 사용한 비유는 모두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둑에게 갑자기 날이 밝는 것처럼 그날이 여러분에게 갑자기 닥치지: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그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갑자기 닥치지”로 번역한다. 이러한 번역 표현은 “도둑”에 해당하는 단어가 주어로 되어 있는 많은 고대 그리스어 사본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도둑”을 목적어로 보고 현재의 본문 표현처럼 해석하는 것도 사본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문맥과도 잘 부합된다. 바울이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모두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입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살전 5:5) 이 표현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든, 이 표현에 담긴 주된 의미는 여호와의 날이 닥칠 때 그리스도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지: 여기서 “자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성경에서 실제로 잠을 자는 것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마 8:24; 막 4:38; 살전 5:7) 하지만 이 단어는 무관심하고 경계심을 늦추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쓰인다. 잠을 자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며 시간이 흐르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잠을 자는 사람도 여호와의 목적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며 그분의 날이 신속히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심판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잠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벧후 3:10-12.

정신을 차립시다: 직역하면 “취하지 않은 상태로 있기를 바랍니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살전 5:8; 딤후 4:5; 벧전 1:13; 4:7(“깨어 있다”); 5:8에도 나온다.

믿음과 사랑의 흉갑: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세 가지 중요한 특성인 믿음, 사랑, 희망을 갑주의 두 부분에 비한다. (이 구절에 나오는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에 대한 연구 노트 및 살전 1:3 연구 노트 참조) 흉갑이 군인의 심장을 보호하는 것처럼, 믿음과 사랑도 그리스도인의 비유적인 심장인 마음을 보호해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특성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 특성들을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는 군인이 착용하는 장비에 비한 것이다. 엡 6:14에서 바울은 “의”라는 특성을 흉갑에 비한다.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투구가 머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구원의 희망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보호해 준다. 바울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믿음과 사랑의 흉갑”과 함께 이 비유적인 투구를 언급한다. (살전 5:6, 7) 이 투구를 머리에 쓴 그리스도인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상을 받을 것을 열렬히” 바라본다. (히 11:26) 그가 구원의 희망을 강하게 유지하면 영적으로 계속 깨어 있게 된다.—엡 6:17 연구 노트 참조.

잠들어: 또는 “죽어 잠들어”. “잠들어 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죽은 상태에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 9:24; 막 5:39연구 노트; 눅 8:52) 이 구절 즉 살전 5:10에서 바울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다는 표현을 살아 있거나 죽은 상태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격려하고: 또는 “위로하고”. 이 단어는 살전 4:18에서 “위로하다”로 번역되었다.—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을 주재하고: 또는 “여러분을 지도하고; 여러분을 인도하고”. 그리스어 프로이스테미는 문자적으로 “앞에 서다”라는 의미로, 인도하거나 사회하거나 지도하거나 관심을 나타내거나 돌본다는 뜻을 담고 있을 수 있다.

훈계하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테테오는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가 결합된 말로, “생각을 심어 주다”로 직역할 수 있다. 일부 문맥에서는 “경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러한 예로 살전 5:14을 들 수 있다.

각별히 존중하십시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가운데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정과 깊은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살전 5:12) “각별히”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각각 “위에”, “초과하는”, “넘치는”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이 결합된, 의미가 강한 표현이다.

무질서한 사람들: “무질서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대열을 지키지 않고 규율을 따르지 않는 군인들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단어를 “무질서하게 전진하는” 군대를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스어 구어에서 이 단어는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도 쓰였지만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였다. 바울은 여기서 이 단어를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불순종하고 그리스도인 표준에서 심각하게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살전 4:11; 살후 3:6.

경고하고: 또는 “훈계하고”.—살전 5:12 연구 노트 참조.

우울한 사람들: 또는 “낙담한 사람들”.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올리고프시코스)는 문자적으로 “작은 영혼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큰 영혼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자신감이 넘치고 자립심이 강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따라서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단어에는 자중심이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칠십인역」에서는 “근심이 있는”이나 “슬픔에 잠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사 35:4; 54:6) 데살로니가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때문에 낙담해 있었거나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서 낙담해 있었던 것 같다. (살전 2:14; 4:13-18) 바울은 그처럼 우울한 사람들에게 훈계하거나 경고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위안해 주라고 말한다.—이 구절에 나오는 위로의 말을 하고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위로의 말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파라미테오마이)는 요 11:19, 31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나사로가 죽은 뒤에 유대인들이 그의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했다고 알려 준다. 이 단어는 매우 부드럽고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가 “위로하다”로 번역된 고전 14:3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사람에게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참을성” 또는 “오래 참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은 차분하게 인내하고 분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러한 특성들을 한결같이 나타내신다. (롬 2:4; 9:22; 딤전 1:16; 벧전 3:20; 벧후 3:9, 15. 갈 5:2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와 예수를 본받아 참을성을 나타내야 한다. (고전 11:1; 엡 5:1) “참을성을 나타내다; 참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가 두 종에 관한 예수의 비유에 두 번 사용되었는데, 그 비유 가운데서 그 종들은 각각 “참아 주십시오”, “참아 주게”라고 청했다. (마 18:26, 29) 비유 가운데서 하늘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주인과는 달리, 용서하지 않는 “악한 종”은 참을성과 자비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 (마 18:30-35) 예수의 비유 그리고 동일한 동사가 사용된 벧후 3:9을 볼 때, 다른 사람들에게 참을성을 나타내는 것에 용서하고 자비를 보이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매 순간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도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하느님께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항상 그분께 인도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잠 3:6) 바울은 다른 여러 편지에서도 비슷한 권고를 했다.—롬 12:12; 엡 6:18; 빌 4:6; 골 4:2.

영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불을 끄다”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끄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를 번역한 것이다. 이 동사는 막 9:48에서는 상징적인 불과 관련하여 사용되었고, 히 11:34에서는 문자적인 불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서 바울은 이 단어를 하느님의 “영” 즉 활동력과 연관시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 영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불처럼 작용하여 그들이 그 영으로 “타오르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여호와의 영과 일치하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힘을 줄 수 있다. (롬 12:11연구 노트 참조. 행 18:25 연구 노트 참조) 육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성령을 무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그 영의 불을 끄는 것이다.—갈 5:17; 살전 4:8.

예언: 하느님으로부터 온 소식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예언” 참조) 하느님의 영감받은 소식을 멸시하는 것은 그 소식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 무시하고 경멸하여 배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일치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행 17:11 비교) 앞 구절인 20절에서 바울은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경고를 볼 때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예언이든지 그것이 정말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확인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 1세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일부는 예언의 선물을 받았다. (롬 12:6; 고전 14:1-3) 하지만 예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도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마 24:11, 24; 막 13:22)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언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마 7:16-20) 예언의 내용이 영감받은 성경의 말씀과 조화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바울이 기원 50년경에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당시 기록되어 있던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은 마태복음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예언이나 가르침이 정말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주의 깊이 연구해야 했다.

확인하고: 사도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확인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시험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그리스어는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아보려고 조사하고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귀금속을 감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바울은 롬 12:2(연구 노트 참조)에 나오는 “확인하십시오”라는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때에: 살전 2:19 연구 노트 참조.

형제 여러분의 영과 영혼과 몸: 바울이 데살로니가 형제들을 위해 진심에서 우러나와 간청한 내용(23, 24절)을 보면, 그가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의 영적 복지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바울이 사용한 세 가지 표현은 이 문맥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은 회중의 지배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고전 5:5; 갈 6:18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 참조) 영혼은 회중의 생명 즉 존재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은 회중을 구성하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고전 12:12, 13 비교) 회중에 대한 바울의 깊은 관심이 그가 하느님께 그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고 “모든 면에서 건전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에 나타나 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롬 16:16 연구 노트 참조.

주: 이와 같은 문맥에서 “주”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과 문맥을 고려할 때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할 만한 근거가 확실치 않은 경우,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번역자로서의 한계를 넘어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주”라는 표현을 남겨 두었다. (부록 다1 참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이 문맥에서 “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살전 5:28.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일부 사본에서는 이 편지의 끝에 “아멘”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바울이 쓴 일부 편지가 “아멘”이라는 말로 끝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롬 16:27; 갈 6:18) 이 편지의 경우에는 원문에 “아멘”이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고 볼 만한 사본상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미디어

흉갑
흉갑

1세기에 로마 군인들은 가슴과 등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흉갑을 착용했다. 계급이 높은 장교들은 동체 갑옷 (1) 즉 몸에 맞게 제작한 두 개의 금속판으로 된 흉갑을 입었다. 이 갑옷의 앞판과 뒤판은 한쪽이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은 고정 장치나 끈을 이용해 고정했다. 많은 군인들은 철 합금이나 구리 합금으로 만든 비늘로 된 흉갑(2)을 입었다. 그러한 흉갑은 가죽이나 면으로 된 안감에 비늘을 붙인 형태였다. 그런가 하면 가죽으로 만든 상의 위에 쇠사슬로 된 갑옷(3)을 입는 군인들도 있었다. 그러한 갑옷은 수많은 쇠고리를 서로 엮어서 만들었다. 이 갑옷은 몸을 잘 보호해 주었으며 다른 흉갑에 비해 가벼웠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해 주는 특성인 의와 믿음과 사랑을 흉갑에 비했다.—엡 6:14; 살전 5:8.

로마 군인의 투구
로마 군인의 투구

삽화에 보이는 것은 1세기에 로마 군인들이 썼던 투구 중 두 가지를 그린 것이다. 그러한 투구는 청동이나 철로 만들었다. 투구는 둥근 형태로, 목을 보호하는 부분이 있었고 뺨을 덮는 부분이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투구에는 이마 부분에 보호대가 달려 있어서 군인들이 얼굴을 가격당하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모든 투구의 안쪽에는 다른 재료가 덧대어져 있었으며, 장시간 착용할 수 있도록 그 속에 푹신한 재료를 넣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군인들은 투구를 비롯한 보호 장비들을 자신의 비용으로 사야 했던 것 같다. 바울은 영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투구에 비했다. 투구가 치명적인 가격으로부터 군인의 머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구원의 희망”은 그리스도인의 사고력을 보호해 주고 미래에 누릴 생명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게 해 준다.—살전 5:8, 9; 딛 1:2.

편지를 쓸 때 사용하던 도구
편지를 쓸 때 사용하던 도구

이 유물들은 기원 1세기에 글을 쓸 때 사용하던 도구이다. 당시 사람들은 나일강 변에서 자라는 갈대를 잘라 만든 펜을 사용했을 수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잉크통에 값싼 검은 잉크를 담아 사용했다. 다양한 재료에 글을 썼는데, 그중에는 나무 판이나 토기 조각이나 양피지나 파피루스가 있었다. 긴 편지를 쓸 때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쓴 다음, 남는 부분을 잘라 내어 나중에 사용했다. 짧은 편지를 쓸 때는 두루마리를 잘라서 파는 낱장을 사서 사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편지는 길지 않았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가 평균 정도의 길이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영감을 받아 쓴 편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