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전서 5:1-25
각주
연구 노트
연로한 남자: 문맥을 볼 때 여기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나이 든 남자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이 구절에 언급된 “젊은 남자들”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쓰였다. 하지만 다른 문맥에서는 동일한 단어가 “장로들” 즉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딤전 5:17; 딛 1:5. 행 11:30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디모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특히 장로로 함께 섬기는 남자에게 시정이 필요하다면 디모데는 “아버지에게 하듯이 권고”해야 했다.
연로한 남자를 심하게 비평하지 말고: “심하게 비평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때리다”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거칠게 질책하다; 말로 꾸짖다”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젊은 나이에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여 그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딤전 1:3) 디모데는 특히 연로한 남자들에게 동정심과 존경심을 보여야 했다.—레 19:32. 이 구절에 나오는 권고하십시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권고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파라칼레오)는 따뜻하게 격려하고 권고함으로 개인적인 관심을 나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가 “격려하는”으로 번역된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인 회중에 사랑 많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흐르게 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고전 4:14; 살전 2:7, 8) 디모데는 필요한 교훈을 베풀 때에도 사람들을 거칠게 대해서는 안 되었다.
극히 순결하게: 또는 “극히 깨끗하게”. “순결하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성적인 부면이나 그 밖의 부면과 관련된) 행동뿐 아니라 생각과 동기도 깨끗한 것을 의미한다. (딤전 4:12. 빌 4:8 연구 노트 참조) 디모데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을 누이를 대하듯이 대해야 했다. 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대할 때도 온전히 순결해야 즉 생각과 말과 행동이 깨끗해야 했다.—욥 31:1.
진정한 과부인 과부들: 또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들”.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가리킨다.
배려해 주십시오: 직역하면 “존중하십시오”. 이 표현은 “계속 존중하십시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흔히 가난하고 기댈 데 없는 과부들을 존중심 있게 대하고 사랑의 동기로 친절하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여러 사전들에 따르면, 이 문맥에서 바울이 사용한 “배려해 주십시오(또는 “존중하십시오”)”에 해당하는 단어에는 물질적 지원을 베푼다는 뜻도 담겨 있을 수 있다. (마 15:5, 6; 행 28:10 비교. 딤전 5:17 연구 노트 참조) 성경의 여러 기록은 하느님께서 충실한 과부들을 사랑하고 존중하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한 예로 나오미, 룻, 사르밧의 과부, 여예언자 안나에 관한 기록이 있다.—룻 1:1-5; 2:10-13, 19, 20; 4:14, 15; 왕상 17:8-24; 눅 2:36-38.
자기 집안에서 경건한 정성을 실천하고: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 “경건한 정성”(그리스어 유세베이아)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이 그리스어 명사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숭상심과 경외심을 가리킨다.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바울은 그 단어의 동사형(유세베오, “경건한 정성을 실천하고”)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숭상심이 있다면 배우자를 잃은 부모나 조부모의 필요를 돌볼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존경하고”, “의무를 다하고”로 번역한다. 하지만 그런 번역 표현에는 어렵고 감정적으로 힘든 경우가 많은 그런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참을성과 기쁨과 사랑으로 하는 동기가 영적인 것이라는 사상이 빠져 있다. (전 12:1-8) 바울이 사용한 동사를 보면 그처럼 부모나 조부모를 돌보는 일이 기본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을 나타내고 가정생활에 관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출 20:12; 마 15:3-6; 딤전 5:8; 약 1:27.
경건한 정성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는 이 부분이 “집안을 지혜와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으로 돌보고(이끌고)”라고 되어 있다.—딤전 2:2 연구 노트 비교.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과부에 관해 바울이 한 말은 누가가 여예언자 안나에 관해 기록한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그 연로한 과부는 “빠지지 않고 성전에 나왔으며, 단식하고 간구하며 밤낮으로 신성한 봉사를 드렸다.” (눅 2:36, 37) 그와 비슷한 예로, 예수께서는 “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다. 그는 가진 것이 “가치가 아주 적은, 작은 동전 두 닢”뿐이었지만,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함에 넣었다. (눅 21:1-4. 4절 연구 노트 참조) 복음서에 나오는 이 여자들에 관한 기록과 바울이 이 구절에서 한 말은 여호와께서 강한 믿음을 나타낸 그리스도인 과부들을 매우 존중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육적인 만족을 얻는 일에 몰두하는 여자: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자기 만족에 몰두하여 사치스럽게 사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또한 도덕 표준이 낮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바울은 배우자 없이 혼자 지내는 상황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기회로 여긴 일부 그리스도인 과부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딤전 2:9 비교) 회중의 관대한 물질적 지원을 이용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하거나 여호와의 도덕 표준에 어긋나는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회중은 당연히 그러한 지원을 해서는 안 되었다.—딤전 5:3 연구 노트 참조.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죽은 상태라는 뜻이다.—계 3:1 비교. 엡 2:1 연구 노트 참조.
교훈하여: 또는 “명령하여”.—딤전 1:5 연구 노트 참조.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특히 자기 집안 식구들: 이 두 표현 중에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의미 폭이 더 넓은 표현으로,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친족을 가리킨다. “자기 집안 식구들”은 이 문맥에서 한 집에 사는 직계 가족을 가리킨다.
부양하지: 물질적으로 부양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가장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배우자를 잃은 부모와 조부모가 신체적, 물질적 필요를 스스로 돌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 성인 자녀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는 앞으로 어떤 필요가 있을지 예상하고 그들을 돌볼 마련을 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요 19:26, 27 비교) 바울의 말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이 권고를 따르는 것은 단지 의무감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의 승인을 받기 원하기 때문이다.—출 20:12; 신 5:16; 마 15:4-6.
그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며: 그리스도인 믿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제자들이 영감을 받아 가르친 내용이 모두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계속 유효하다는 점을 밝히셨으며 그러한 의무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을 정죄하셨다. (출 20:12; 신 5:16; 막 7:9-13)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배우자를 잃은 부모나 조부모를 포함해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믿음과 일치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고의적으로 그 의무를 소홀히 여긴다면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자연스러운 애정에서 우러나와 가족을 돌보기 때문이다.—롬 2:14, 15.
믿음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는 이 부분이 “여호와를 부인하는(저버리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리스어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부록 다 참조.
명단에 올릴 수 있는 과부: “명단에 올리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공식적으로 등록한다는 의미로 자주 쓰였다. 당시 회중에는 가난한 과부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는 조직된 마련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회중이 어떤 그리스도인 과부에게 물질적 지원을 베풀어야 하며 어떤 과부에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지 전반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60세 이상으로: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60세는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노년이 시작된다고 여겼던 나이이다. 60세가 된 과부는 재혼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자신을 부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룩한 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고: 당시 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발등 부분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먼지가 많이 나는 길을 걸어왔을 것이므로,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친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은 비천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후대를 나타내는 그러한 행동을 하면 자신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다. (눅 7:44) 따라서 훌륭한 일을 했다는 평판이 있는 어떤 과부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일도 했다면 그는 겸손한 태도와 섬기는 정신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면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어려울 때 더 기꺼이 도우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눅 6:38.
젊은 과부들은 명단에 올리지 마십시오: 바울은 회중이 믿음에 있어서 본이 되고 물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연로한 과부들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11-15절에서 그는 젊은 과부들을 돕는 일에 대해 주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딤전 5:12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은 처음에 나타냈던 믿음을 저버렸기: 또는 “그들은 이전에 한 약속을 저버렸기”. 이 말을 볼 때 에베소의 일부 젊은 과부들은 계속 독신으로 지내면서 헷갈림 없이 온전한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려는 열망을 표현했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나 서약까지 했을지 모른다. (고전 7:34 비교) 그래서 회중에서는 그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베풀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우선순위가 바뀐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성적 욕망이 그들과 그리스도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딤전 5:11) “게다가” 그들은 다른 육적인 경향들도 나타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빈둥거릴 뿐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하며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했다.” (딤전 5:13) 따라서 14절에서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영적으로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딤전 5:14 연구 노트 참조.
남의 이야기를 하며: 이 그리스어의 동사형은 기본적으로 “끓어 넘치다”를 의미하며 “횡설수설하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그처럼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정신에 떠오르는 대로 말을 쏟아 낸다.” 물론 뚜렷한 목적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것은 해로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일부 젊은 과부들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나는 젊은 과부들이 결혼하[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젊은 과부들에게 결혼하여 집안을 돌볼 것을 권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호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것과 같은 본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딤전 5:13. 딤전 2:15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바울이 12절에서 언급한 “처음에 나타냈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딤전 5:12 연구 노트 참조.
과부인 친족들: 그리스도인 여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포함해 자기 가족 가운데 과부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돌볼 책임이 있었다. 가까운 친족 가운데 과부가 있는데 그를 돌보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런 사람도 그리스도인 여자가 돌보아야 할 가족 가운데 포함되었을 것이다.
회중에 짐을 지우지 않도록 하십시오: 회중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과부들을 하느님의 귀중한 종으로 여겨야 했다. (딤전 5:5, 9, 10) 하지만 바울은 돌보아 줄 가족이 있는 과부에게는 회중이 물질적 지원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지 않는 과부에게도 그러한 지원을 베풀어서는 안 되었다. (딤전 5:4, 6, 7, 11-15) 회중이 그러한 과부들을 돌본다면 회중의 기금과 형제 자매들의 활력이 낭비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런 기금과 활력이 전파 활동과 구호 봉사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고후 8:4 연구 노트 참조.
진정한 과부들: 또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들”.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가리킨다.
훌륭하게 주재하는: “주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앞에 서다”를 의미한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장로들은 앞장서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양 떼를 영적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리스도인 각자가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움으로 비유적인 의미에서 회중 앞에 서야 했다. 동일한 그리스어가 아버지가 자기 집안을 “다스린다”는 표현에도 사용되었다. (딤전 3:4) 아버지는 때때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규칙을 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로들이 가진 권위는 가장이 가진 권위와 다르다. (고후 1:24; 갈 6:5) 그들은 양 떼를 대할 때 그리스도의 성품, 특히 겸손을 본받음으로 겸허하게 머리이신 그분께 존경심을 나타낸다.—마 20:24-28; 요 13:13-16; 골 1:18.
장로들: 바울은 이미 에베소 회중과 개인적으로 강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행 19:1, 8-10; 20:17, 31, 37, 38) 그는 몇 년 전, 3차 선교 여행이 끝나 갈 무렵(기원 56년경)에 에베소의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행 20:17 연구 노트 참조) 그때 그는 감독자들이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행 20:28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바울은 회중이 수고하는 장로들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두 배나 존중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 존중심과 존경심을 나타내야 한다. (롬 12:10; 빌 2:3)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수고하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중하라고 즉 그들에게 더 많은 존중심을 나타내라고 말한다. 그들의 지시에 협조하고 그들의 좋은 본을 따름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히 13:7, 17) 이어지는 딤전 5:18에서는 “두 배나 존중”하는 것에 필요한 물질적 지원을 베푸는 일이 포함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이것은 장로들이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의 본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에게 말한 것처럼 세속 일을 하여 스스로를 부양했다.—행 18:3; 20:17, 34; 고전 4:16; 11:1; 살전 2:6 및 연구 노트, 9.
성경에서도: 바울은 앞 구절에서 자신이 한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구절을 인용한다. (롬 9:17 및 연구 노트; 10:11 비교) 그가 처음으로 인용한 구절은 신 25:4이다. (또한 고전 9:9 연구 노트 참조) 두 번째는 레 19:13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바울이 복음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가 사용한 표현은 눅 10:7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거의 같다.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것은 기원 56-58년경이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기원 61년에서 64년 사이인 것 같다. (바울이 사용한 표현은 마 10:10에 나오는 말과도 비슷한데, 마태복음은 기원 41년경에 쓰여졌다.) 따라서 이것은 성경 필자가 복음서의 내용을 인용한 초기의 사례로서, 그 복음서가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임을 확증해 주는 것일 수 있다.—바울이 주 예수의 명령을 언급한 고전 9:14 비교. 또한 고전 12:10 연구 노트 참조.
연로자: 또는 “장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나이가 많은 남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남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행 20:17; 딤전 5:1 연구 노트 참조.
고발: 회중의 장로가 성경의 표준을 심각하게 범했다는 고발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고발이 사실임이 입증된다면 그는 더는 “책잡힐 것이 없”는 또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딤전 3:2; 딛 1:5, 7) 그럴 경우, 그는 더는 장로로 섬길 자격이 없을 것이다.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는 고발로 인해 장로가 회중에서 추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전 5:13; 6:9, 10.
두세 증인의 증거: 바울은 영감을 받아 모세 율법에 나오는 이 표준을, 장로가 하느님의 법을 심각하게 범했다는 고발을 당하는 경우에 적용한다. (신 17:6; 19:15) 이러한 표준은 누군가가 충실한 장로를 중상하려는 의도로 고발하더라도 그 장로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잘못이 없는 장로가 그런 고발을 당하면 좋은 평판을 잃고 회중을 돌보는 임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두세 증인”에 의해 그러한 고발이 사실임이 증명되면, 장로의 회는 징계 조처를 취할 것이다.
죄를 거듭 짓는 사람들: 여기서 “죄를 짓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 번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일부 번역판에서도 이 부분을 “줄곧 죄를 짓는 이들” 또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번역한다.
모든 사람 앞에서: 직역하면 “모두가 보는 가운데”. 바울은 죄를 지은 사람의 행동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회중 전체 앞에서 책망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인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거나 그러한 행동에 대해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사건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도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눅 8:47에서는 예수께서 한 여자를 고쳐 주셨을 때 그가 “왜 그분을 만졌는지 … 모든 사람 앞에서 [직역하면 “모두가 보는 가운데”] 말했다”고 알려 준다. 그 기록에 사용된 표현과 문맥을 보면 그 여자가 “누가 나를 만졌습니까?”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여자가 많은 무리를 이룬 모든 사람이나 도시의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눅 8:43-47.
책망하여: “책망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성경에서 누군가에게 그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납득시킨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책망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게 하려는 유익한 목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한 사전에서는 그 단어에 “‘바르게 하다’ 즉 ‘죄에서 떠나 회개로 향하게 하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책망은 교육하려는 의도로 베푸는 징계이다. 요 16:8에서는 동일한 그리스어가 “납득할 만한 증거를 … 제시하다”로 번역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게 하십시오: 직역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하십시오”. 이 표현은 공개적으로 즉 “모든 사람 앞에서” 베풀어지는 책망의 목적이 무엇인지 밝혀 준다. 바울이 언급한 “나머지 사람들”은 죄인에게 책망이 베풀어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들은 죄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책망은 그들이 죄를 짓지 않고 죄를 짓게 만들 수 있는 행동들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택된 천사들: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천사들을 선택하여 그분 앞에서 봉사자로 섬기게 하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배척하신 악한 천사들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유 6) 또한 일부 충실한 천사들은 땅에 있는 하느님의 종들을 보호하고, 전파 활동을 감독하고, 그들이 본 것을 여호와와 예수에게 보고하는 일을 하도록 선택된다.—히 1:14; 계 14:6. 마 18:10 연구 노트 참조.
엄숙히 명령합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표현은 하나의 그리스어 동사를 번역한 것이다. 한 사전에서는 이 동사를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권위를 갖고 권고하다”라고 정의한다. (동일한 동사가 「칠십인역」에도 나오는데, 예를 들면 삼상 8:9과 대하 24:19에 사용되었다.) 앞서 바울은 장로가 잘못을 범했다는 고발을 당할 경우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죄를 거듭 짓는 사람들을 책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한 문제들이 매우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명령한다고 말한다. 임명받은 남자들이 그런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도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신 분들이 분명히 보고 계신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 경각심을 갖게 한 것이다.—롬 2:16; 히 4:13.
편견이나 편파성을 보이지 말고: 바울은 두 가지 종류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경고한다. 편견은 어떤 사람에 대해 미리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편파성은 개인적인 친분 등의 이유로 어떤 사람에게 과도하거나 부당한 호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결코 성급히 손을 얹지 말고: 디모데는 손을 얹어 감독자를 임명할 권한을 받은 것 같다. (용어 설명 “손을 얹는 일” 및 행 6:6 연구 노트 참조) 디모데는 아무도 “성급히” 임명해서는 안 되었다. 정말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주의 깊이 검토한 뒤에 임명해야 했다. (딤전 3:1-7) 임명된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디모데가 바울의 교훈을 따르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디모데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죄에 참여하게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자격 없는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게 될 것이었다.
포도주를 조금 마시십시오: 바울 시대에 포도주는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소화 문제를 완화시키고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눅 10:3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자주 앓는 병”이 있는데도 기꺼이 인내하며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런 조언을 함으로 아버지와 같은 따뜻한 애정을 표현했다. 고대와 현대의 문헌들은 포도주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려 준다. 그리스의 의사인 코스의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년경)는 “몸이 튼튼하지 않고 보통 사람보다 약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치료법”의 일부로 “소량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추천했다. 1세기 로마의 의학 저술가인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켈수스는 이렇게 말했다. “위장 문제가 있는 사람은 … 공복에 물이 아니라 따뜻한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
미디어
이 사진들은 20세기 초에 촬영된 것으로, 농부가 부리망을 씌운 소를 이용해 곡식을 타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농부는 밀과 겨를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수확한 곡식 위로 소가 타작 썰매를 끌고 지나가게 했다. 부리망을 씌운 소는 일하는 동안 곡식을 먹을 수 없었다. 모세 율법은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우는 것을 금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동물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었다. (신 25:4) 배가 고픈 동물에게 일을 시키면서 바로 앞에 있는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 명령에 담긴 원칙을 근거로, 열심히 일하는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그에 합당한 영예와 물질적 지원을 받아도 된다고 설명했다.—고전 9:9-14; 딤전 5:17, 18.
사진에 보이는 것은 암포라로 알려진 항아리이다. 그러한 항아리들은 크기가 다양했는데, 여기 나오는 것은 높이가 약 100센티미터이며 포도주 약 28리터를 담을 수 있었다. 이러한 암포라는 바닥이 뾰족하게 생겨서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의 짐칸에 쉽게 쌓을 수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포도주는 귀중한 물품이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과 유대인은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 포도주를 마셨다.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시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당시에는 식수가 많이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포도주가 세균의 증식을 막는 천연 살균제로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다. “더는 물만 마시지 말고 그대의 위장과 자주 앓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 마시십시오.”—딤전 5:23,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