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23

4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굳건히 서십시오.+ 2  나는 유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순두게에게 권고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십시오.+ 3  그렇습니다. 나는 진실한 동료 일꾼인 당신에게도 부탁합니다. 이 여자들을 계속 도와주십시오. 그들은 글레멘드와 그 밖의 나의 동료 일꾼들과 더불어 좋은 소식을 위해 나와 함께 나란히 힘써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습니다.+ 4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7  그러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 8  끝으로 형제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 무엇이든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것,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 무엇이든지 좋은 말을 듣는 것, 무엇이든지 덕이 되는 것,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한 것, 이러한 것들을 계속 숙고하십시오.+ 9  여러분이 나와 관련해 배우고 또 받아들이고 듣고 본 그것들을 계속 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10  이제 여러분이 마침내 나에게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을 나는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습니다. 11  내가 궁핍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부족하게 지내는 법도 알고+ 풍부하게 지내는 법도 압니다.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부하든 궁핍하든, 모든 일에서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잘 지내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13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인해 내게는 모든 일을 할 힘이 있습니다.+ 14  그렇지만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5  사실, 여러분 빌립보 사람들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이 좋은 소식을 처음으로 알게 된 후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나던 때에, 나와 주고받는 일을 한 회중은 오직 여러분밖에 없었습니다.+ 16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보내 주었기 때문입니다. 17  나는 선물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장부에 이익을 늘려 줄 열매를 바라는 것입니다. 18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넉넉합니다. 여러분이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것을 받았으므로 나는 풍족합니다. 그것은 향기이고+ 받아들이실 만한 희생 제물이며 하느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19  이제 나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부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온전히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20  우리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거룩한 자 모두에게 나의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2  모든 거룩한 자들, 특히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이 여러분이 나타내는 영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각주

연구 노트

주: 여기서 “주”라는 칭호(그리스어 원문에서 정관사가 없이 사용됨)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많은 번역판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 점은 여기 나오는 “주”를 여호와로 이해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빌 4:4 연구 노트 비교.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지십시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칭찬과 격려의 말을 많이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시정하는 조언을 베푼다. 그가 이 구절에서 언급한 두 명의 그리스도인 자매 사이에는 회중의 평화와 연합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불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멀리 로마에 수감되어 있던 사도 바울에게 그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다. 바울이 베푼 조언을 볼 때 이 두 자매는 장성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빌 4:3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장성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불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행 15:37-39) 그들 사이에 무엇 때문에 불화가 있었든, 바울은 어느 한쪽 편을 든 것이 아니라 두 자매 모두에게 주에 대한 서로의 사랑을 바탕으로 같은 정신을 갖고 연합을 이루기 위해 힘쓰라고 부드럽게 권한다.—요 17:21 연구 노트 참조.

진실한 동료 일꾼: 이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직역하면 “함께 멍에를 멘 진정한 동료”가 된다. 여기서 바울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 빌립보 회중의 한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도움을 베풀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이 “주 안에서 같은 정신”을 가져 불화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빌 4:2 연구 노트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명하신 사도였던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의 주인이 아니라 동료 일꾼으로 여긴 것은 유의할 만하다. (행 9:15; 롬 11:13) 바울은 회중 위에 군림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모두 형제”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른다.—마 23:8; 벧전 5:3. 고후 1:24 연구 노트 참조.

나란히 힘써 싸운: 또는 “나란히 몹시 애쓴”.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는 불화가 있었던 것 같다. 빌립보 회중 사람들도 그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이 이전에 자신과 함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한 것에 대해 칭찬한다. 그가 이 여자들이 베푼 도움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이 그리스어 동사는 앞서 빌 1:27에서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와 동일하다. 그 구절에서도 이 동사는 “함께 힘쓰다; 나란히 애쓰다; 열심히 협력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습니다: 이 비유적인 기념책은 충실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완벽한 기억 속에 있으며 그분이 그들에게 하늘이나 땅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주실 것이라는 사랑에 찬 보증이다. (계 3:5; 20:15) 이 표현이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볼 때, 충실한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조건부임을 알 수 있다. 그 책에 이름이 남아 있고 약속된 상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 충실을 유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출 32:32, 33; 시 69:28, 각주; 말 3:16) 앞서 바울은 빌립보 회중에서 열심히 일하는 기름부음받은 자매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언급했다. 그들 사이에는 불화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비유적인 책에 이름이 기록된 동료 일꾼들 가운데 이 자매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사소한 불완전성과 잘못 때문에, 믿음 안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어 있는 약속된 상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딤후 2:11, 12 비교) 책에 이름이 있다고 한 바울의 표현을 읽으면서 로마의 식민 도시였던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도시의 공식 명부를 떠올렸을 수 있다. 그 명부에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또다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라고 권고한다. (빌 3:1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주”라는 칭호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구절들에는 여호와 안에서 기뻐하라고 되어 있다.—시 32:11; 97:12.

합리적인: “합리적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의미 폭이 넓은 단어로, 양보하거나 사려 깊거나 관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법의 자구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기꺼이 순응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합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의 앞부분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십시오”라고 번역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특히 회중의 감독자들이 이 특성을 나타내야 한다.—딤전 3:3; 딛 3:2; 약 3:17. 고후 10:1 연구 노트 참조.

주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여기서 “주”라는 칭호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여호와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시 145:18에서는 “여호와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 가까이 계십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시 34:18 참조) 하느님께서는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신다. 그분은 자신의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에서 그들 가까이 계신다. (행 17:27; 약 4:8) 그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빌 4:6에 나오는 것처럼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고 기뻐하고 합리적이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머지않아 이 낡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그분의 왕국이 통치하는 신세계를 가져오실 것이라는 의미에서도 가까이 계신다. (요1 2:17)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몇몇 번역판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염려하지 말고: “염려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메림나오)는 정신이 나뉘어 주의가 산만해지고 기쁨을 잃을 정도로 걱정하거나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예수께서도 여러 차례 비슷한 권고를 하셨다. (마 6:25; 눅 12:22 연구 노트 참조) 바울 자신에게도 염려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 편지를 쓴 때는 로마에 첫 번째로 수감되어 있던 때였다. (빌 1:7, 13, 14) 또한 그는 필수품이 부족한 것에 대해 염려했을 수도 있고 (빌 4:12)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상태에 대해 염려했을 수도 있다. (고후 11:28연구 노트)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그와 비슷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그들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라고 격려한다.—또한 시 55:2, 22; 벧전 5:7 참조.

말고: 여기서 “염려하지 말고”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더는 염려하지 말고” 또는 “더는 걱정하지 말고”로 번역할 수도 있다.—눅 12:22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일에: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분을 섬기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든 기도의 합당한 주제가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한 삶의 거의 모든 부면에 대해 기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깊은 감정과 필요와 두려움과 염려에 대해 여호와께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마 6:9-13; 요 14:13(연구 노트 참조), 14; 16:23, 24; 벧전 5:7; 요1 5:14.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기서 바울이 말한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숭배의 일부로서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간구”는 더 구체적인 단어로, 간청하거나 탄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강한 표현이다. 그러한 간구는 강렬한 감정에서 우러나와 눈물을 흘리며 하는 경우가 많다. (히 5:7) 한 참고 문헌에서는 간구를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부르짖는 것”으로 정의한다. 바울은 “감사와 더불어”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언제나 합당하다는 점을 밝힌다. 상황이 절박할 때에도 감사해야 할 이유들이 있다. 바울은 경험을 통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행 16:22-25; 엡 5:19, 20) 또한 바울은 청원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요청”을 의미하는 단어로 여기서는 기도로 요청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쓰였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다양한 필요에 대해 청원할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모든 일에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는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상황을 더 잘 “이해”할수록 더 큰 염려에 휩싸이고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전 1:18) 하지만 하느님의 평화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여호와의 종은 자신이 겪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종들을 시련에서 구해 주실 수도 있지만 (막 10:27; 벧후 2:9) 참을성 있게 인내하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약 5:11) 그런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평화를 주신다. (사 26:3) 여호와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심각한 문제나 신체적 해나 심지어 죽음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정신의 평온함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느님의 평화: 그리스도인이 여호와 하느님과 맺고 있는 소중한 관계로 인해 누리게 되는 정신의 평온함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은 극심한 어려움이나 시련을 겪을 때에도 이러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하느님의 평화”는 단순히 명상이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화의 하느님”이신 여호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빌 4:9; 민 6:26; 시 4:8; 29:11; 롬 15:33. 갈 5:22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는 것은 여호와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그분이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잠 3:32) 그분은 자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필요와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주신다. 그러한 확신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평온하게 해 준다.—시 34:18; 94:14; 벧후 2:9. 이 구절에 나오는 지켜 줄 것입니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서 그분이 하시는 역할을 이해할 경우에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예수의 대속 희생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 여호와와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누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친밀한 관계는 정신과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기초가 된다. (행 3:19; 갈 1:3-5; 요1 2:12)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왕국의 왕이신 예수께서 사탄과 그의 제도가 초래한 모든 해를 바로잡으실 것임을 기억함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사 65:17; 요1 3:8; 계 21:3, 4) 그에 더해 예수께서는 이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 내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점 역시 그들이 정신의 평화를 누리는 데 도움이 된다.—마 28:19, 20; 빌 1:18, 19.

여러분의 마음: 성경에서 “마음”은 속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이 정신 또는 “정신력”과 함께 언급될 경우에는 의미가 더 구체적이 되어 주로 사람의 감정, 욕망, 동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마 22:37 연구 노트 참조.

정신력: 또는 “정신; 생각”.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사람의 지성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고후 3:14; 4:4; 11:3에서는 “정신”으로, 고후 10:5에서는 “생각”으로 번역되었다. 바울은 “마음과 정신력”을 함께 언급함으로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인의 속사람 전체를 지켜 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켜 줄 것입니다: “지켜 주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군사 용어이다. 이 단어는 문자적인 의미로 쓰이면 보초나 수비대를 배치하여 요새 도시를 지키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고후 11:32)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이 구절과 다른 구절들에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갈 3:23; 벧전 1:5) 빌립보는 군사 도시였다. 빌립보 주민들은 군인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밤에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충실한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평화”가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켜 주고 있기 때문에 정신의 평화와 영적 안전을 누린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 4:8; 145:18; 고전 10:13; 벧전 5:10)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은 염려나 낙담에 압도되지 않도록 그들을 지켜 준다.—이 구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평화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의로운: 용어 설명 “” 참조.

순결한: 또는 “깨끗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성적인 부면이나 그 밖의 부면과 관련된) 행동뿐 아니라 생각과 동기도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의미한다.—시 24:3, 4; 엡 5:3; 딤전 4:12; 5:2; 약 3:17; 벧전 3:2.

계속 숙고하십시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생각하다”; “묵상하다”; “곰곰이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을 “정신에 가득 채우십시오” 또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라고 옮긴 번역판들도 있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은 행동으로 이어져 그리스도인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주게 된다.—빌 4:9.

주: 여기서 “주”라는 칭호(그리스어 원문에서 정관사가 없이 사용됨)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많은 번역판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 점은 여기 나오는 “주”를 여호와로 이해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빌 4:4 연구 노트 참조.

자족하는: “부족한 것이 없다”, (고후 9:8) “자족하다”, (빌 4:11) “만족하다”(딤전 6:6)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가진 것으로 만족하거나 충분히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울은 여행 중에 온갖 상황을 경험하면서 그 모든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여호와께서 어떤 임명을 주시든 그 임명을 수행하면서 행복해하고 만족했다. (빌 4:12, 13) 바울은 예수를 본받았는데, 그분은 물질적인 부를 많이 모으거나 한 곳에 정착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마 8:20) 바울은 예수를 본받아,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몰두하고 그분이 기본적인 필요를 돌봐 주실 것임을 신뢰했다.—히 13:5.

마케도니아: 용어 설명 참조.

주고받는 일: “주고받는 일”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업 거래에서 “차변과 대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이었다.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에게 베푼 재정적인 도움을 가리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축복을 받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바울에게 물질적인 선물을 주었다. (고전 9:11 비교) 빌립보 회중의 그리스도인들은 초기부터 관대하게 베푸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일례로 루디아는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아낌없이 후대를 베풀었다. (행 16:14, 15) 빌립보 회중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적어도 네 차례 그에게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다. 그중 마지막으로 언급된 것은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기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그들은 로마에 수감되어 있는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필요한 것을 보내 주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쓴 이유 중 하나도 그 일 때문이었다. (고후 11:9; 빌 4:14, 16, 18) 바울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관대하게 베푼 여러 그리스도인 회중을 칭찬했는데, 그러한 내용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태도를 발전시키도록 모든 제자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했다.—롬 15:26; 고후 8:1-6.

하느님: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아멘: 롬 1:25 연구 노트 참조.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 당시(기원 61년경) 로마의 카이사르 즉 황제는 네로였다. (용어 설명 “카이사르” 참조)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황제의 직계 가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카이사르를 위해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표현이었을 것이며 아마도 그 수는 수천 명에 달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는 노예와 해방민(노예 신분이었다가 자유를 얻은 사람)을 비롯해 로마와 속주들에서 정부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도 포함되었다. 유대인 저술가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론도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집단을 가리키는 데 동일한 그리스어 표현을 사용했다. (「플라쿠스」 35) 바울은 로마에 수감되어 있는 자신이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데 자신이 도움을 주었는지의 여부도 밝히지 않는다.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이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도 성경은 알려 주지 않는다. 빌립보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즉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의 친족이거나 친구였을 수 있다. 바울이 로마서의 끝부분에서 안부를 전한 충실한 사람들 가운데는 카이사르의 집안사람들도 일부 포함되었을 수 있다.—롬 16:3-16.

여러분이 나타내는 영: 갈 6:18 연구 노트 참조.

바랍니다: 일부 고대 사본들에는 이 구절의 끝에 “아멘”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멘”이 없는 현재의 번역 표현이 사본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도 원문에 그렇게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바울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과 기쁨이 담긴 편지를 쓰다
바울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과 기쁨이 담긴 편지를 쓰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빌립보로 돌아올 때, 로마에 수감되어 있던 사도 바울의 편지를 가져왔다. (빌 1:13; 2:25; 4:18)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사랑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빌 1:4; 2:17, 18; 3:1; 4:1, 4) 바울은 다른 몇몇 편지에서 한 것처럼 강한 논증이나 책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평화롭게 서로 협력하라고 권고하기는 하지만, 이 두 충실한 자매를 “좋은 소식을 위해 [그]와 함께 나란히 힘써 싸운 사람들”로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 한 명에게 “이 여자들을 계속 도와주라”고 권한다. (빌 4:3) 이 편지 전체에서 바울은 빌립보 회중 사람들에게 훌륭한 행로로 계속 걸으라고 격려한다.—빌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