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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예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나타내시다

예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나타내시다

1-3. 이전에 예수의 이웃이었던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그들은 무엇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청중은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 예수가 회당에서 자신들 앞에 서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 자랐고,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목수로 일해 왔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청중 가운데는 예수의 도움을 받아 지은 집에서 살거나 예수가 직접 만든 쟁기나 멍에를 사용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a 그러면 그들은 이전에 목수였던 예수의 가르침에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입니까?

2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크게 놀라며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을까?” 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이고 마리아의 아들이다.” (마태복음 13:54-58; 마가복음 6:1-3) 안타깝게도, 한때 예수의 이웃이었던 그 사람들은 ‘저 사람은 목수고 우리와 같은 동네 사람일 뿐이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가 깊은 지혜가 담긴 말을 했는데도 그들은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알려 준 지혜가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3 그러면 예수께서는 그러한 지혜를 대체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의 것입니다.” (요한복음 7:16)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0) 여호와의 지혜는 그분의 아들 예수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지혜를 너무나 완벽하게 반영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0:30) 이제 예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나타내신 세 가지 부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내용

4. (ㄱ) 예수의 소식의 주제는 무엇이었으며, 그 주제가 매우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의 조언이 언제나 실용적이었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첫째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내용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분이 전하신 소식의 주제는 “왕국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43) 그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국을 통해 자신이 최상의 통치자라는 것을 증명하여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인류에게 영원한 축복을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혜로운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예언된 “놀라운 조언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이사야 9:6) 그분의 조언이 어떻게 놀랍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매우 잘 아셨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셨으며 인류를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조언은 언제나 실용적이었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조언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6:68.

5.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까?

5 산상 수훈은 예수의 가르침에 들어 있는 탁월한 지혜를 잘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5:3–7:27에 기록된 산상 수훈을 말로 전달한다면 아마 20분밖에 안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조언은 시대를 초월하며, 예수께서 처음 그 연설을 하셨을 때만큼이나 지금도 유익합니다. 예수께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법(5:23-26, 38-42; 7:1-5, 12), 도덕적 깨끗함을 유지하는 법(5:27-32),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법(6:19-24; 7:24-27)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말씀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유를 설명하고 증거를 제시하심으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6-8. (ㄱ) 예수께서는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셨습니까? (ㄴ) 예수의 조언에 위에서 온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6 예를 들어, 물질에 대한 염려에 대처하는 법에 관한 예수의 지혜로운 조언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더는 여러분의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거나, 여러분의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25절)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기본적인 필수품이며,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얻을지 염려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더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b 이유가 무엇입니까?

7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몸을 주셨는데, 그분이 우리의 생명에 필요한 식품과 우리의 몸을 덮을 의복을 공급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25절) 하느님께서 새들을 먹이고 꽃들을 아름답게 입히신다면,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잘 돌보시겠습니까! (26, 28-30절) 지나친 염려를 하는 것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의 수명을 조금도 늘릴 수는 없습니다. c (27절)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계속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삼으라고 조언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들이 매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33절)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매우 실용적인 제안을 하십니다. 매일매일 그날 하루에 집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염려가 있는데 내일의 염려까지 미리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34절) 또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을 지나치게 염려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러한 지혜로운 조언을 적용하면 스트레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마음의 고통을 많이 덜 수 있을 것입니다.

8 확실히, 예수께서 거의 2000년 전에 하신 조언은 그때만큼이나 지금도 실용적입니다. 이것은 그 조언에 위에서 온 지혜가 담겨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사람들이 하는 조언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금방 시대에 뒤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곧 수정되거나 다른 조언으로 대치됩니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놀라운 조언자인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3:34.

그분이 가르치신 방법

9. 군인 몇 사람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으며,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9 둘째로,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방법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를 반영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를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은 군인 몇 명이 빈손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7:45, 46)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사셨던 예수께서는 그 어떤 사람보다 지식과 경험이 많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23) 그분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방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이처럼 지혜로운 선생님인 예수께서 사용하신 방법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무리는 그분이 가르치시는 방식에 크게 놀랐다”

10, 11. (ㄱ)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것에 감탄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의 비유가 가르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어떤 예가 있습니까?

10 비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셨다.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 비유로 말씀하셨다. 참으로, 비유가 아니면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13:34) 일상적인 것들을 사용해서 심오한 진리를 가르치시는 그분의 탁월한 능력에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씨를 심는 농부, 빵을 구울 준비를 하는 여자,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이미 여러 번 보아 왔던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비유로 들어 중요한 진리를 설명할 때, 그러한 진리는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신속하면서도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마태복음 11:16-19; 13:3-8, 33, 47-50; 18:12-14.

11 때때로 예수께서는 도덕적 진리나 영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짧은 이야기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야기가 추상적인 개념보다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는 예수의 가르침을 마음에 간직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이야기에서 예수께서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표현을 사용해 아버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셨습니다. 한 가지 예로, 탕자의 비유의 요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여호와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따뜻하게 다시 받아 주십니다.—누가복음 15:11-32.

12. (ㄱ) 예수께서는 가르치실 때 어떻게 질문을 사용하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자신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어떻게 잠잠하게 만드셨습니까?

12 질문을 능숙하게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리거나 자신의 동기를 검토해 보거나 결정을 내리도록 돕기 위해 질문을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24-30; 17:24-27; 22:41-46)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권한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을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의 침례는 하늘에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입니까?” 이 질문에 당황한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그러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 종교 지도자들은 “무리를 두려워했”습니다. “무리가 모두 요한이 참으로 예언자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모르겠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마가복음 11:27-33: 마태복음 21:23-27) 예수께서는 간단한 질문으로 그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드셨으며, 그들의 동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13-15. 이웃다운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어떻게 예수의 지혜를 보여 줍니까?

13 때때로 예수께서는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하여, 비유를 드는 중에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한 유대인 법률가가 예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모세 율법의 규정을 언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유대인이 혼자 여행을 하다가 강도들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강도들은 그 유대인을 반쯤 죽게 된 채로 버려 두고 갔습니다. 유대인 두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제사장이었고 그다음은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다친 사람을 못 본 체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그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싸매 주고 사랑을 나타내어 그가 회복될 수 있도록 안전한 여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이야기를 끝맺으시면서 질문을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당신은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질문을 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누가복음 10:25-37.

14 이 비유에는 예수의 지혜가 어떻게 나타나 있습니까? 예수 시대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만을 “이웃”이라고 여겼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은 결코 이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4:9) 만일 예수께서 사마리아 사람이 피해자이고 유대인이 그를 돕는 이야기를 하셨더라면, 그러한 편견을 뒤집을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지혜로우시게도,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을 따뜻하게 돌봐 주었다는 이야기를 만드셨습니다. 또한 이야기 끝에 예수께서 하신 질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이웃”이라는 말의 초점을 옮기셨습니다. 그 법률가는 사실상 “나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어 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은 이 셋 중에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친절을 받은 피해자가 아니라 친절을 베푼 사마리아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진정한 이웃은 민족적 배경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솔선해서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방식”에 놀라고 그분에게 이끌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7:28, 29) 한번은 “많은 무리”가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나지도 않은 채 3일 동안이나 그분 곁에 머무른 적도 있었습니다!—마가복음 8:1, 2.

그분의 생활 방식

16.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살고 있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16 셋째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통해 여호와의 지혜를 반영하셨습니다. 지혜는 실용적이며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제자 야고보는 ‘여러분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질문한 다음 그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올바른 행실로 지혜의 실제적인 증거를 보이십시오.” (야고보서 3:13, 신영어 성서) 예수의 행실은 그분이 하느님의 지혜에 따라 살고 있다는 “실제적인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자신의 생활 방식과 다른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에서 어떻게 건전한 판단력을 나타내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7. 예수께서 완벽하게 균형을 유지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7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종종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균형을 잘 잡으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지혜를 반영하여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분은 생활에서 영적인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매우 부지런히 좋은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온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8) 당연히 물질적인 것들은 그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분은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거의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8:20) 하지만 그분은 금욕주의자가 아니셨습니다. “행복하신 하느님”이신 아버지 여호와처럼 예수께서도 기쁨에 넘치는 분이셨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디모데 전서 1:11; 6:15) 당시에 결혼 잔치는 일반적으로 음악과 노래가 있는 즐거운 행사였는데, 예수께서도 결혼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행사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잔치 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그분은 물을 좋은 포도주로 바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음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시편 104:15; 요한복음 2:1-11) 예수께서는 식사 초대에 자주 응하셨으며, 많은 경우 그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누가복음 10:38-42; 14:1-6.

18.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대하실 때 어떻게 흠 없는 판단력을 나타내셨습니까?

18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대하실 때에도 흠 없는 판단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셨기 때문에, 자신의 제자들의 생각과 감정과 동기를 완벽하게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는 좋은 특성들을 알아보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께서 이끄신 그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6:44) 그들은 결점이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기꺼이 신뢰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맡기심으로 그들에 대한 신뢰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셨고 그들이 그 임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9, 20) 사도행전은 그들이 예수께서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도행전 2:41, 42; 4:33; 5:27-32)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을 신뢰하신 것은 분명히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19. 예수께서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9 이 책 20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경은 겸손과 온화함이 지혜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 줍니다. 물론, 이 면에서 최상의 모범이 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떠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대하실 때 겸손을 나타내신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서 제자들보다 우월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자들을 얕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그들이 열등하거나 무능하다고 느끼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한계를 고려하셔서 그들의 결점에 대해 참을성을 나타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4:34-38; 요한복음 16:12) 심지어 아이들도 예수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분명히 아이들은 예수께서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하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분에게 이끌렸을 것입니다.—마태복음 11:29; 마가복음 10:13-16.

20. 예수께서는 한 이방인 여자를 대하실 때 어떻게 합리적인 태도를 나타내셨습니까?

20 예수께서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겸손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자비를 나타낼 이유가 있을 때는 합리적이고 양보하는 태도를 나타내셨습니다. 예를 들어, 한 이방인 여자가 심하게 악귀 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그분에게 간청했을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세 번이나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 여자를 도와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처음에 그분은 그 여자의 요청에 대답하지 않으셨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이방인에게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친절하게 그 점을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탁월한 믿음을 나타내며 끈질기게 간청했습니다. 이처럼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딸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1-28) 정말 탁월한 겸손이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겸손은 진정한 지혜의 기초가 됩니다.

21. 우리가 예수의 성품과 말과 특성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복음서들에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분이 하신 말씀과 행동이 기록되어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 여호와를 완벽하게 본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의 성품과 말과 특성을 본받는다면, 위에서 오는 지혜를 나타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하느님의 지혜를 생활에서 나타낼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a 성경 시대에는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농기구를 만들 때 목수를 고용했다. 기원 2세기에 살았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예수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 목수로 일하며 쟁기나 멍에를 만드셨다.”

b “염려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정신이 분산되다”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6:25에 사용된 이 단어는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놓아 삶에서 기쁨을 앗아 가는 걱정과 두려움을 가리킨다.

c 사실, 연구 조사 결과에 의하면, 걱정과 스트레스가 지나치면 심혈관계 질환을 비롯하여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병에 걸릴 위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