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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제16장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허락하셨는가?

1.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의 존재를 의심하는 공통된 이유 중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창조주의 존재를 의심하는 공통된 이유 중 한 가지는 전세계에 고통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그토록 수없이 자행되어 온 잔혹 행위, 유혈 및 노골적인 악행은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읍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 모든 일을 허락하는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성서 기록이야말로 창조에 관한 사실들과 가장 잘 부합하므로, 성서는 능하신 창조주께서 그 많은 고통을, 그토록 오랜 기간 허락하신 이유도 이해하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입니까?

2. 성서에서는 첫 인간 부부가 살게 된 환경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2 「창세기」 서두에 나오는 장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거기에서는 고통 없는 세상이 창조된 것을 묘사해 줍니다. 첫 남녀에게는 낙원 환경 속에서 에덴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정원 같은 거처가 주어졌고 그들에게는 즐겁고 해볼 만한 일들이 있었읍니다. 땅과 관련하여 그들은 “그것을 경작하며 그것을 돌보”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또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들의 날아 다니는 피조물들과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산 피조물들”도 감독했읍니다.—창세 1:28; 2:15, 신세.

3. 아담하와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까?

3 그뿐 아니라 첫 인간들은 완전한 신체와 완전한 정신을 갖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그들에게는 결함이 전혀 없었읍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질병이나 노화 혹은 죽음 때문에 고통당할 이유가 없었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상 낙원에서 끝없는 미래를 향유할 전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신명 32:4.

4. 인류와 땅 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4 첫 부부는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지시도 받았읍니다. 그들이 자녀를 낳음에 따라 인간 가족은 증가하고, 낙원의 경계를 확장해 나감으로 마침내 온 땅이 낙원이 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연합된 가족으로서 모두가 지상 낙원에서 완전한 건강을 누리며 살게 되어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필요성

5. 하나님의 통치를 인간이 받아들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그러나 그러한 조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첫 인간 부부는 인간사를 다스릴 창조주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였읍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주권을 받아들여야 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우선, 그것이 합당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물건을 만든 자에게는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를 가할 권리가 분명히 있읍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원칙은 소유권 법률에 반영되어 왔읍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분의 인도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사실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창조주를 떠나서 스스로 성공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설계되지 않았읍니다. 마치 그들이 먹고 마시고 숨쉬지 않으면 살아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성서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정확함을 증명해 주었읍니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인간은 창조주께서 자기들을 위해 설정하신 지침 안에 머무는 한, 지속적이고 성공적이고 행복한 생명을 누리게 되어 있었읍니다.

6, 7. (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자유는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첫 인간들은 어떠한 잘못된 선택을 하였읍니까?

6 또한, 인간은 자유 행위자가 되도록 창조되었읍니다. 그들은 로봇같은 반응을 보이게 지음을 받지도 않았고, 동물이나 곤충들처럼 주로 본능에 따라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지도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 되어야 하였읍니다. 공통의 유익을 위해 작용하는 하나님의 법의 경계 안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그 자유를 행사해야 하였읍니다. 성서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유의하십시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 전 2:16) 인간의 상호 관계를 다스리는 법이 없다면 무정부 상태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의 생활은 해로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상대적인 자유는 바람직하지만, 자유가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면 자녀는 번잡한 거리에서 놀거나 뜨거운 난로 위에 손을 얹게 될 수도 있읍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의 인도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결정을 우리 나름대로 내릴 수 있는 완전한 자유는 온갖 문제들을 유발할 수 있읍니다. 첫 인간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읍니다. 그들은 자유라는 선물을 남용하는 길을 택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릇되게도, 창조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그들은 옳고 그른 것을 자기들 스스로 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창세 3:5.

8. 아담하와가 하나님의 통치를 뿌리쳤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8 첫 인간들이 창조주의 인도를 뿌리쳤을 때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선풍기의 플럭을 뽑았을 때 일어나는 일과 유사했읍니다. 선풍기가 전원에 꽂혀 있는 한, 선풍기는 돌아갑니다. 그러나 전원에서 뽑으면 속도가 떨어지면서 결국은 완전히 정지하고 맙니다. 아담하와가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주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때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읍니다. (시 36:9) 그들이 자기들을 지으신 분에게서 독립하는 행로를 고의적으로 택하였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이 자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심으로 그들의 선택의 온전한 의미를 깨닫게 하셨읍니다. 한 가지 성서 원칙이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역대 하 15:2)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창조주의 힘이 없어짐으로 인해 정신과 신체는 점차 쇠약해지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윽고 그들은 노쇠하여 죽고 말았읍니다.—창세 3:19; 5:5.

9. 첫 인간들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전 인류는 어떠한 영향을 받아 왔읍니까?

9 아담하와가 자기들을 지으신 분에게서 독립하는 길을 택하였을 때 그들은 완전성을 상실하였읍니다. 이 일은 그들이 자녀를 갖기 전에 있었읍니다. 그 결과, 후에 그들에게 자녀가 생겼을 때, 이들은 부모가 갖게 된 상태, 곧 불완전성을 반영하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첫 인간은 마치 결함이 있는 틀과도 같은 것이 되었읍니다. 거기에서 산출되는 모든 것 역시 결함이 있었읍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고, 노화, 질병과 죽음 등 무기력한 특징들을 유전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불완전해지고 창조주와 그분의 법에서 떨어져 나와 있게 되자 인간의 온갖 어리석은 행위가 물밀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고통과 슬픔과 병과 죽음으로 가득차 있읍니다.—시 51:5; 로마 5:12.

10. (ㄱ) 영계에서 어떠한 반역이 일어났읍니까? (ㄴ)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읍니까?

10 이 말은 악이 전적으로 인간에게서만 시작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또 있읍니다. 인간만이 지성있는 피조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전에 하늘에 무수히 많은 영물들을 창조하셨읍니다. (욥 38:4, 7) 그들 역시 자유 행위자들이었으며, 창조주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한 영물들 중 하나가 자의로, 독립하려는 욕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였읍니다. 그의 야망은 점점 커져서 급기야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도까지 되었읍니다. 그는 아담의 아내 하와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도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임을 보장하였읍니다. (창세 3:4; 야고보 1:13-15) 그의 말은 그들이 생명과 행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 창조주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암시였읍니다. 사실상, 그는 범법 행위가 실은 그들의 처지를 향상시켜서 그들이 하나님 같이 되게 할 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하나님의 법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시는 방법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읍니다. 사실상 그는 창조주께서 통치하실 권리 자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이러한 허위 진술 때문에 그는 “반항자”라는 의미로 사단이라 불리게 되었고 “중상자”란 의미로 마귀라고 불리게 되었읍니다. 지난 6,000년 동안 사단의 이러한 태도는 인류에게 영향을 주어 ‘지배 아니면 파멸’이라는 정책을 발전시켜 왔읍니다.—누가 4:2-8; 요한 1서 5:19; 계시 12:9.

11. 하나님께서 반항자들을 시초에 쓸어버리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그러나 하나님께서 범법자들인 인간과 영물을 모두 시초에 멸망시키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모든 지성 있는 피조물 앞에 의미 심장한 쟁점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에 들어 있읍니다. 관련된 쟁점들 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의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과연 항구적인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인도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인가? 인간은 창조주에게서 독립하여 이 세상을 과연 성공적으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인간에게는 참으로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시간이 흘러야만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들이었읍니다.

왜 그토록 오래 걸리는가?

12. 하나님께서 시초에 개입하셨었다면, 그분에 대한 어떤 비난이 제기되었을 수 있읍니까?

1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시기에 앞서 지금까지 약 6,0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러가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문제들은 이미 오래 전에 만족스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았읍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개입하셨더라면, 인간이 효율적인 정부를 세우고 모두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주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킬 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으셨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써, 제기된 쟁점들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분은 그 시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13, 14.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3 여러 세기에 걸쳐 갖가지 정부, 갖가지 사회 제도, 갖가지 경제 제도가 시도되어 왔읍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에게는 원자를 이용하고 달 여행을 하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기술적 발전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왔읍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이 모든 것이 전 인류 가족에게 참된 축복이 될 만한 세상을 가져왔읍니까?

14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인간이 시도해 온 그 어느 것도 모두에게 참다운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읍니다. 오히려 그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태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불안합니다. 범죄, 전쟁, 가정 파탄, 빈곤, 굶주림이 여러 나라를 휩쓸고 있읍니다. 인류의 존재 자체가 위태롭게 되었읍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핵 미사일들은 인류를 전멸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대부분을 멸절시킬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수천년간 노력하고 여러 세기에 걸쳐 경험을 쌓고 기술 발전에 있어서 신기원들을 이룩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도 대부분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15. 인간의 반역의 결과로 땅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15 심지어는 땅 자체도 해로운 영향을 받아 왔읍니다. 인간의 탐욕과 태만은 보호가 되는 수풀을 벌거숭이로 만듦으로 특정 지역들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읍니다. 화학 물질들과 기타 폐기물들은 토지와 바다와 공기를 오염시켰읍니다. 지상 생명 상태에 관한 2,000년 전의 성서 묘사는 오늘날의 상태를 한층더 적합하게 묘사해 줍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로마 8:22.

무엇이 증명되었는가?

16, 17.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름으로 무엇이 증명되었읍니까?

16 그동안 무엇이 의문의 여지없이 증명되었읍니까? 창조주에게서 독립한 인간의 통치는 불만족스럽다는 점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분을 떠나서는 이 지상사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읍니다. 통치해 보려는 인간의 시도에 대한 성서의 솔직한 평가를 역사는 계속 확증해 주고 있읍니다. 성서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전도 8:9.

17 창조주의 법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의 질서 및 정밀함과 비교할 때, 인간의 노력은 참으로 재난만 가져올 뿐이었읍니다! 분명히, 인간사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인간은 바로 그러한 인도를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감독을 무시하는 것은 재난만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공기와 물과 먹을 것이 필요한 것 만큼이나 확실하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함이 참으로 항상 입증되어 왔읍니다.—마태 4:4.

18.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장래를 위한 영구적 판례가 어떻게 마련되었읍니까?

18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 통치에 관한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심으로써 장래를 위한 영구적인 판례를 확립하셨읍니다. 그것은 판단 기준이 되는 대법원의 판례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쟁점은 항구적으로 해결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통치는 지상에 바람직한 상태를 가져올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장차 그 어떤 자유 행위자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에 도전한다 하더라도 그의 주장을 증명해 보도록 수천년을 가외로 또 허락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 6,000년의 이 기간 중에 증명되어야 할 모든 것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영원토록, 다시는 어떠한 반역자도 지상에서의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파괴하거나 우주의 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훼방하도록 허락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서에서 이렇게 힘주어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훔 1:9.

하나님의 해결책

19. 악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19 이처럼 성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고통이 있게 된 데 대하여 이치적인 설명을 해줍니다. 또한 성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을 사용하셔서 고통을 일으키는 자들을 제거하실 때가 가까왔음을 명백히 알려 줍니다. 잠언 2:21, 22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계시 11:18) 거기에는 또한 마침내 사단 마귀가 제거되는 일도 포함될 것입니다. (로마 16:20)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가 그분의 아름다운 창조물인 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법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뽑히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만이 계속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 1서 2:15-17) 잡초밭 속에 화단을 가꾸거나, 닭과 여우를 같은 우리 안에 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낙원을 회복시키실 때, 파괴주의자들을 그와 동시에 방임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20. 과거의 고통은 어떻게 지워질 것입니까?

20 여러 세기에 걸친 고통이 그것에 피해를 입어 온 사람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기는 하였지만, 그 나름의 좋은 목적에 기여해 왔읍니다. 그것은 자녀가 큰 건강 문제를 고치도록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게 허락하는 것에 비할 수 있읍니다. 장기적인 유익들은 어떠한 일시적 고통도 상쇄하고 남음이 있읍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과 지상의 인간을 위해 목적하신 장래는 압박을 주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깨끗이 없애 줄 것입니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17) 그러므로 인간이 겪어 온 고통이 어떠한 것이었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온 땅을 지배할 때 살 사람들의 정신에서 결국 지워질 것입니다. 그때에는 즐거운 일들이 이전의 모든 나쁜 기억을 몰아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실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셨읍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계시 21:4, 5, 새번역.

21. 심지어 죽은 사람들에게도 어떠한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까?

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다가오는 이 새질서를 “재창조”라고 부르셨읍니다. (마태 19:28, 신세) 과거에 고통과 죽음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그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기들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또한 무덤 속에 죽어 있는 사람들도 문자적으로 재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념 무덤에 있는 모든 자들이 ·⁠·⁠·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5:28, 29, 신세) 그리하여 죽은 자들 역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순복할 기회를 받게 될 것이며 예수께서 “낙원”이라고 부르신 곳에서 영원히 살 특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누가 23:43.

22. 어떠한 상태가 동물계에 회복될 것입니까?

22 심지어 동물계도 평화로와질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심지어 그것들이 “어린 아이에게 끌”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새질서에서 동물들은 서로 혹은 인간에게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을 것입니다.—이사야 11:6-9; 65:25.

23.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까?

23 그리하여 로마서 8:21에서 말하듯이, 모든 면에서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윽고, 땅은 낙원이 되고 질병과 슬픔과 죽음에서 해방된 완전한 사람들이 거할 것입니다. 고통은 영원히 과거지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창조해 놓으신 모든 부면들이 그분의 목적과 온전히 조화를 이루게 됨으로, 수천년간 그분의 우주를 더럽혀 온 추한 얼룩이 제거될 것입니다.

24. 성서에 대해 무엇이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읍니까?

24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와 그분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실 일에 대한 성서의 설명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성서의 내용이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연구 질문]

[188면 삽입]

많은 사람들은 질문한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 모든 일을 허락하는가?’

[190면 삽입]

인간은 창조주를 떠나서 스스로 성공적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190면 삽입]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 되어야 하였다

[192면 삽입]

그릇된 것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193면 삽입]

제기된 쟁점을 철저히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194면 삽입]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

[196면 삽입]

창조주께서는 악한 자가 그분의 아름다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198면 삽입]

모든 면에서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다

[189면 삽화]

첫 인간들은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191면 삽화]

선풍기를 전원에서 뽑으면 속도가 떨어지면서 정지하듯이 아담과 하와도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오자 노쇠하여 죽었다

[194면 삽화]

그토록 여러 세기가 지났는데도 세계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이다

[195면 삽화]

질문을 대답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판단 기준이 되는 대법원 판결과 같은, 장래를 위한 판례를 확립하셨다

[197면 삽화]

사람들이 이전에 겪었던 고통이 어떠한 것이었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새질서에서 맛볼 즐거운 일들에 의해 지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