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의: 인류를 위한 여호와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 그분은 그것을 기록하는 데 16세기의 기간에 걸쳐 약 40명의 인간 서기를 사용하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영을 통해 기록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도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그 기록의 상당한 부분이 여호와께서 실제로 공표하신 사실들과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성서에서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그분의 요구 조건들과 그분이 땅에 대한 자신의 웅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실 일들에 관한 말씀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점들을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또한 성서 안에 개인이나 국가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목적과 일치하게 행할 때 일어나는 일과 임의대로 행할 때 오는 결과를 설명해 주는 기록을 보존하셨다.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신뢰할 만한 역사 기록으로 우리에게 그분이 인류를 대하신 점과 그분 자신의 놀라운 성품에 관하여 알려 주신다.
성서를 살펴 보아야 할 이유들
성서 자체가 그것이 인류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디모데 둘째 3:16, 17: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책망하고 사물을 바로잡고 의로 징계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전히 유능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완전히 갖추게 해 줍니다.”
계시 1:1: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 이것은 반드시 곧 일어날 일들을 하느님께서 자기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분에게 주신 것이다.”
사무엘 둘째 23:1, 2: “이새의 아들 다윗의 말[이다]. ···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하였으니, 그분의 말씀이 내 혀에 있었다.”
이사야 22:15: “주권자인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소식이라면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성서는 전역 혹은 부분역으로 거의 1800개 언어로 번역되어 왔다. 그 배포 수는 전부 수십억 부에 달한다. 「월드 북 백과사전」은 이와 같이 알려 준다. “성서는 역사상 가장 널리 읽혀진 책이다. 아마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기도 하다. 성서는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이 배포되어 왔다. 성서는 또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은 횟수,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왔다.”—1984년판, 2권, 219면.
성서 예언은 세계 상태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많은 세계 지도자들은 인류가 대 재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와 있음을 인정한다. 성서는 오래 전에 그런 상태를 예언하였다. 성서는 그러한 상태의 의미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디모데 둘째 3:1-5; 누가 21:10, 11, 31) 성서는 우리가 임박한 세계 멸망을 생존하고, 이곳 지상에서 의롭고 행복한 상태 아래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스바냐 2:3; 요한 17:3; 시 37:10, 11, 29.
성서는 우리로 인생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성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답해 준다. 생명은 어디서 왔는가? (사도 17:24-26)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작 몇해 동안 살면서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누리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인가?—창세 1:27, 28; 로마 5:12; 요한 17:3; 시 37:11; 시 40:8.
성서는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성서는 우리에게, 진실로 서로 사랑하는 건전한 동료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요한 13:35), 자신과 가족들이 필요한 충분한 양식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마태 6:31-33; 잠언 19:15; 에베소 4:28),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관하여 알려 준다.—시 1:1, 2; 34:8; 누가 11:28; 사도 20:35.
다니엘 2:44), 그 통치 아래 인류가 완전한 건강과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계시 21:3, 4; 비교 이사야 33:24.
성서는 하느님의 왕국 즉 그분의 정부가 현 악한 제도를 제거할 것이며 (확실히 하느님께로부터 나왔다고 공언하고, 세계 상태의 의미와 인생의 목적을 설명해 주며,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라면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영감받았다는 증거
성서는 장래에 관한 상세한 지식들을 밝혀 주는 예언들—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베드로 둘째 1:20, 21: “성경의 어떤 예언도 개인적인 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언은 결코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언: 이사야 44:24, 27, 28; 45:1-4: “나 여호와는 ··· 깊은 물에게 말하기를 ‘말라 버려라. 네 모든 강을 내가 말려 버릴 것이다’ 하는 이이다. 키루스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목자이며, 나의 기뻐하는 모든 것을 온전히 실행할 것이다’ 하는 이이다.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재건될 것이다’ 하고,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일 것이다’ 하는 나의 말까지도 그는 실행할 것이다.’ 나 여호와는 키루스의 오른손을 잡고 나라들을 그 앞에 굴복시켜 왕들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고, 두 짝 문들을 그 앞에 열어서 성문이 닫히지 않게 할 것인데, 내가 그 기름부음받은 자 키루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솟아오른 땅을 평탄하게 할 것이다. 구리 문들을 산산이 부수고, 쇠 빗장들을 잘라 버릴 것이다. ···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함받은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이사야의 기록은 기원전 732년경에 완료되었다.)
◻ 성취: 키루스는 그 예언이 기록될 때 태어나지 않았었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617-607년이 되기까지는 바빌론에 유배되지 않았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기원전 607년까지는 파괴되지 않았다. 그 예언은 기원전 539년부터 세부적으로 성취되었다. 키루스는 유프라테스의 강물을
인공 호수로 돌려 놓았으며 바빌론의 강변 문은 성 안에서 향연이 베풀어지는 동안 부주의로 인해 열려져 있었다. 그래서 키루스 휘하의 메디아-페르시아 연합군이 바빌론을 점령하였다. 그 후에 키루스는 유배된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그들을 그곳으로 복귀시켰다.—「아메리카나 백과사전」(1956년판), 3권, 9면; 잭 피네건 저 「고대로부터의 빛」(Light From the Ancient Past)(프린스턴, 1959년판), 227-229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1991년판), 282, 283, 285, 296면.◼ 예언: 예레미야 49:17, 18: “에돔은 심한 놀라움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 곁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몹시 놀라 바라보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휘파람을 불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무너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 중에 외국인으로 거주할 인간의 아들도 없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580년에 예언의 기록을 완료하였다.)
◻ 성취: “유다 마카베오는 그들[에돔족]을 기원전 2세기 팔레스타인 지경에서 축출하였고, 마카베오가의 영도자인 요한 히르카누스는 기원전 109년에 유다 왕국의 영토를 확장시켜 에돔 왕국의 서부 영토를 차지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팽창과 더불어 에돔은 완전히 독립을 상실하였다. ··· 기원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이후 ··· 이두매[에돔]란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펑크와 와그널스 신 백과사전」, 1952년판, 11권, 4114면) 그 성취가 우리 시대에까지 계속 된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 예언이, 사건이 성취된 후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결코 있을 수 없다.
◼ 예언: 누가 19:41-44; 21:20, 21: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예루살렘]를 보시고는 그것을 두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 ‘너에게 그 날들이 닥칠 것이니, 그때에 너의 적들이 끝이 뾰족한 말뚝으로 너를 둘러 요새를 세우고 너를 에워싸며 사방에서 압박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를 땅에 내동댕이칠 것이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가운데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네 자신이 검사받는 때를 분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때에 그것을 황폐시키는 일이 다가온 줄 아십시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십시오. 그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떠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원 33년에 하신 예언)
◻ 성취: 예루살렘은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기원 66년에 케스티우스 갈루스 휘하의 로마 군대는 그 성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보고에 따르면, 그 로마 장군은 “갑자기 부하들에게 중지 명령을 내리고 전혀 패배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희망을 버리고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성에서 퇴각했다.” (요세푸스 저 「유대 전쟁사」[The Jewish War], 펭귄 클래식, 1969년판, 167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성에서 도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유세비우스 팜필루스의 저서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에 의하면 그들은 그 성에서 떠나 요단 강 건너편 펠라로 옮겨갔다. (C. F. 크루즈 번역, 런던 1894년판, 75면) 그 다음 기원 70년 유월절쯤에 티투스 장군이 그 성을 포위했고, 3일 만에 7.2킬로미터의 방책을 빙 둘러 세웠으며 5개월 후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루살렘성은 계획적으로 파괴되었고 성전은 무너졌다. 고고학상의 발견에 의하면, 유대 전역의 건물들이 철저하게 파괴되었음을 알려 준다.”—J. A. 톰프슨 저 「성서와 고고학」(The Bible and Archaeology)(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 1962년판), 299면.
성서의 내용은 인간 연구가들이 보다 최근에서야 발견한 내용과 관련하여 과학적으로 정확하다
우주의 기원: 창세 1:1: “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1978년에, 천문학자 로버트 자스트로는 이와 같이 기술했다. “현재 우리는 천문학적 증거를 따라가 보면 세계의 기원에 관한 성서의 견해에 이르게 됨을 알고 있다. 세부점들은 차이가 있지만, 창세에 관한 천문학 기록과 성서 기록의 본질적 요소들은 동일하다. 즉, 인간에까지 이르는 연쇄적인 일들이, 때에 맞춰 어느 한 순간에 빛과 에너지가 번쩍이는 가운데 갑자기 그리고 격렬하게 시작되었다.”—「신과 천문학자들」(God and the Astronomers)(뉴욕, 1978년판), 14면.
행성 지구의 모양: 이사야 40:22: “원 모양의 땅 위에 거하시는 분이 계[시다].” 고대에 일반적인 견해는 땅 곧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서 구절이 기록되고 나서 200년 이상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리스 철학자들의 한 학파는 지구가 구형일지도 모른다고 추리하였으며, 또다시 300년 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그리스의 한 천문학자가 지구의 대략적인 반지름을 계산하였다. 그러나 지구가 구형이라는 생각은 당시만 해도 일반적인 견해가 아니었다. 인간이 항공기로 여행을 하고, 나중에는 외계로, 심지어 달까지 가게 됨으로 지구 둘레의 “원” 모양을 분명히 보게 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동물의 생태: 레위 11:6: ‘산토끼는 되새김질을 한다.’ 그 사실은 오랫동안 일부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18세기에 영국인 윌리엄 쿠퍼가 마침내 토끼가 되새김질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1940년에 「런던 동물 협회 회보」(Proceedings of the Zoological Society of London) 110권, 시리즈 A, 159-163면에 그것이 행해지는 진기한 방법이 설명되었다.
성서의 내부적 조화는 의미 심장하다
성서가 왕, 예언자, 목자, 세금 징수원 및 의사와 같이 다양한 약 40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 점은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1610년이란 기간에 걸쳐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공모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록한 것들은 가장 미세한 점까지 일치한다. 성서의 여러 부분들이 어느 정도로 조화롭게 엮어져 있는지 평가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읽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가 변경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기록을 증명하는 고대 사본들의 수에 있어서, 그리고 원본과 그 증명 사본 사이에 흘러간 햇수에 있어서, 성서는 고전 저술(호메로스나 플라톤같은 사람들의 저서)보다 단연 우세하다. ··· 고전 저술의 사본 수는 성서의 사본 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다. 고대의 책 가운데서 성서와 같이 잘 증명된 책은 없다.”—P. 매리언 심스 저 「성서의 기원」 (The Bible From the Beginning) (뉴욕, 1929년판), 74, 76면.
1971년에 발행된 한 보고서는, 히브리어 성경의 전체 혹은 부분을 담고 있는 필사본이 6000개 정도 있으며, 가장 오래된 것들은 기원전 3세기까지 소급한다고 알려 준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경우에는, 약 5000개의 그리스어 사본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것들은 기원 2세기 초까지 소급한다. 또한 그 밖의 언어들로 된 초기 번역본의 사본들도 많이 있다.
프레더릭 케니언 경은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성서」에 관한 일곱권의
그의 저서 서문에서 이와 같이 기술하였다. “그것들[파피루스 사본들]을 고찰하여 얻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결론은 만족스럽게도 그것들이 현존하는 원문들의 확실성을 본질적으로 확증한다는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 성서에서 뚜렷하게 또는 근본적으로 변경된 부분은 없다.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생략되거나 첨가된 구절이 없다. 또한 중요한 사실이나 교리에 영향을 줄 만한 변경이 없다. 원문의 변경은 낱말의 순서나 정확한 낱말이 사용된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이용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오래된 증거물로서, 현존하는 원문들의 순수성이 확증되었다는 점이다.”—(런던, 1933년판), 15면.일부 성서 번역판들이 다른 번역판들보다 더욱 원문에 밀접히 고착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의 의역 성서들은 때때로 원문의 의미를 임의대로 바꾸어 놓았다. 일부 번역자들은 개인의 믿음을 반영하여 왜곡된 번역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결점들은 다양한 번역판들을 비교함으로 식별할 수 있다.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성서를 믿지 않는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믿으시죠? ··· 성서에 있는 내용 중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실례지만, 항상 그렇게 생각해 오셨습니까? ··· 다른 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성서를 철저히 연구해 본 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성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주신 소식이며 우리가 그 가르침대로 믿고 살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성서가 분명히 알려 주기 때문에, 적어도 성서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기 위하여 그것을 조사해 보는 일은 가치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199-202면의 내용 사용.)’
‘성서에는 모순되는 것이 많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말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점이 실제로 모순인지 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분은 아무도 319면의 내용 사용.)’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성서를 읽을 때에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제가 알게 된 사실은 많은 분들이 성서 질문에 대해 답을 얻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카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얻었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 말입니다. (‘사람들이 성서를 썼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사실 그렇습니다. 기록하는 데 약 40명이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느님께서 기록하는 일을 지도하셨다는 뜻입니다. 마치 사업가가 비서를 시켜서 자기를 대신하여 편지를 쓰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외계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는 생각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도 달에서 통신하고 사진을 전송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하였습니까? 하느님께서 오래 전에 세워 놓으신 법칙들을 사용함으로써입니다.’ (3) ‘그러나 성서에 들어 있는 말씀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는 인간으로부터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지식일까요? 장래에 관한 세부적인 지식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은 항상 완전히 정확한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199-201면 참조, 또한 “마지막 날” 제하 108-112면 참조.)’
‘누구나 성서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분명히 그들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자기 생각에 맞추기 위해서 성서를 왜곡시킨다면, 지속적인 해가 따릅니다. (베드로 둘째 3:15, 16)’ (2) ‘두 가지 점이 성서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먼저, 특정한 성구의 문맥(앞 뒤 구절들)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성구를, 같은 제목을 다루는 성서의 다른 부분들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인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그러한 접근법이 여호와의 증인의 출판물에서 사용됩니다.’ (“여호와의 증인” 제하 257, 258면 참조.)
‘성서는 우리 시대에 실용적이 아니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실용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전쟁을 없애는 일이야말로 실용적이라는 데 동의하십니까? ···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은 좋은 출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성서는 그에 관하여 정확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2:2, 3)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는 성서 교육의 결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 ‘더 많은 일이 요구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및 나라들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성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다니엘 2:44; 시 37:10, 11)’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염려를 잘 이해합니다. 어떤 지침서가 실용적이 아니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도록 돕는 건전한 교훈을 주는 책이라면 그 책은 실용적이라는 데 동의하시겠지요? ··· 가정 생활에 관한 이론과 관습들은 여러 번 바뀌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나타난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을 알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골로새 3:12-14, 18-21)’
‘성서가 좋은 책이지만, 절대 진리란 없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사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떤 사물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는 종종 그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요소가 적어도 하나 이상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갖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 그렇습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그러한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에 관하여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7:17) 그러한 진리가 성서에 들어 있습니다. (디모데 둘째 3:16, 17)’ (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지한 상태에서 헤매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 첫째 2:3, 4) 성서는 ···와 같은 문제에 관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대답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을 도울 때는, 먼저 하느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증거를 토의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하느님” 제하 409-416면 참조.)
‘성서는 백인의 책이다’
이렇게 응답할 수 있다: ‘확실히 그들이 성서를 많이 출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성서는 창조주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분은 편파적이 아니십니다. (사도 10:34, 35)’ (2)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나라와 부족의 사람들에게 그분의 왕국 아래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합니다. (계시 7:9, 10, 17).’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의 창조주는 영감을 주어 66권의 성서를 기록할 사람들을 선택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해도, 그것은 그분의 소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소식은 백인에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렇게 부언할 수 있다: (1) ‘예수께서 말씀하신 점에 유의 하십시오. ··· (요한 3:16) 어떤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든 “누구나”에 포함되지요. 또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고별사를 남기셨습니다. ··· (마태 28:19)’ (2) ‘흥미롭게도, 사도행전 13:1에서는 “검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니게르라는 사람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그는 시리아 안티오크 회중의 예언자이자 가르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성서를 따로 가지고 있다’
“신세계역” 제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