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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필리아

팜필리아

(Pamphylia)

바울이 일 차 선교 여행 중에 방문한 소아시아 남쪽 해안에 있던 로마의 작은 속주. 이 속주의 크기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하였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팜필리아는 해안선을 따라 길이 약 120킬로미터 폭 최고 50킬로미터로 뻗어 있던 좁고 긴 지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서쪽으로는 리키아 속주와, 북쪽으로는 로마의 갈라디아 속주와, 동쪽으로는 안티오코스 왕국과 접해 있었다. 팜필리아의 해안은 기후가 덥고 열대성이었지만, 토로스 산맥으로 올라가면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후는 온화해졌다.

이곳에는 원주민 부족과 그리스 사람들이 섞여서 살았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팜필리아라는 말의 의미가 “부족이나 인종이 뒤섞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델과 스콧의 「희영 사전」 Greek-English Lexicon, H. 존스 개정, 옥스퍼드, 1968년, 1295면) 이 지역에는 유대인들이나 유대인 개종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팜필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이 “자기의 언어”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란 것을 볼 때 그러하다.—행 2:6, 10.

해안이나 그 인근에는 항구 도시인 아탈리아, 케스트루스(악수) 강변의 페르가, 시데 등 여러 주요 도시가 있었는데, 해안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그러한 도시들에서 노획물을 팔았으며 또한 그러한 도시들에는 노예 시장도 있었다. 키프로스의 파포스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요한 마가는 북서쪽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여 “팜필리아에 있는 페르가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아탈리아에서 내려서 육지로 페르가까지 수 킬로미터를 여행하였는지 혹은 곧장 페르가로 항해하였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에는 케스트루스 강이 적어도 페르가까지는 배가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요한 마가는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북쪽으로 산악 지대를 지나 (갈라디아 속주에 있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크로 갔다. (행 13:13, 14; 15:38; 27:5) 그들이 지나간 길은 산적이 출몰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고둘 11:26 비교) 돌아오는 길에 그 두 그리스도인은 팜필리아를 지나 페르가에 가서 그곳에서 전파하였다. 그다음 그들은 아탈리아에 있는 항구로 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시리아의 안티오크로 갔다.—행 14:24-26.

오랜 세월에 걸쳐 팜필리아는 리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지배하에서 이곳은 시간이 흐르면서 (동쪽의) 길리기아와 함께 하나의 속주를 이루었다가, 다음에는 갈라디아와, 마지막으로는 리키아와 하나의 속주를 이루었다.—행 13:13; 16:6;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