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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분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7:30.

1. 예수의 행로는 어떤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또 자기 영혼을 많은 사람들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0:28) 그리고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내가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 18:37)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와 죽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사명을 완수하도록 부여받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메시아로서 지상에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봉사의 직무는 예언된 상징적 칠십째 주의 시작에(기원 29년에) 요르단 강에서 물침례를 받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주의 중간에(기원 33년에) 고통의 기둥에서 죽으심으로 끝났습니다. (다니엘 9:24-27; 마태 3:16, 17; 20:17-19)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예수의 전체 행로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요인—자신이 온 목적 그리고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는 예리한 의식—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서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의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2 복음서의 기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레스타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많은 강력한 일들을 행한, 행동하는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활기차게 수행하신 봉사의 직무의 초기에는 그분에 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 예수께서도 친히 “나의 정해진 때가 아직 온전히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봉사의 직무가 끝나갈 무렵에는 “시간이 왔습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요한 7:8, 30; 12:23) 희생적인 죽음을 포함하여 자신에게 임명된 일을 해야 할 시간 즉 때를 의식하고 계신 예수의 태도는 틀림없이 예수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게 되면, 그분의 인간성과 사고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그분의 발걸음’을 더욱 밀접히 “따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베드로 첫째 2:21.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로 결심함

3, 4. (ㄱ)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ㄴ) 포도주가 모자라므로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마리아의 암시에 하느님의 아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3 때는 기원 29년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첫 제자들을 선택하신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제자들은 이제 모두 결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갈릴리 지역에 있는 가나라는 마을에 와 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곳에 와 있습니다. 포도주가 모자랍니다. 마리아는 아들에게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암시로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나의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1:35-51; 2:1-4.

4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예수의 대답은, 암시받은 일이나 제안받은 일에 이의가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고대의 한 가지 질문 방식입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이제 30세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몇 주 전에 침례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아, 침례자 요한에 의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요한 1:29-34; 누가 3:21-23) 이제 그분에 대한 지시는 반드시 그분을 보내신 최고의 권위자로부터 와야 합니다. (고린도 첫째 11:3) 아무도, 심지어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예수께서 이 땅에 하러 오신 일을 방해하도록 허락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하신 대답 가운데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겠다는 그분의 결심이 참으로 단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하느님에 대한 “본연의 의무”를 완수하겠다고 결심하기 바랍니다.—전도 12:13.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나에서 어떤 기적을 행하시며, 그 기적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5 아들이 하는 말의 요지를 파악한 마리아는 즉시 옆으로 비켜서면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당신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지시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섬기는 사람들에게 항아리들을 물로 가득 채우게 하신 다음, 물을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은 예수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일로서, 하느님의 영이 그분 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이 됩니다. 새로운 제자들은 이 기적을 보고 믿음이 강화됩니다.—요한 2:5-11.

여호와의 집에 대한 열심

6.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고 계신 것 때문에 분개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분은 어떤 행동을 취하십니까?

6 얼마 안 있어 기원 30년 봄이 되자, 예수와 그분의 일행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분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지도자가 그들이 아마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을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탐욕스러운 유대인 상인들은 바로 성전 안에서, 희생 제물로 사용할 동물들과 새들을 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충실한 유대인 숭배자들에게 매우 높은 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몹시 분개하신 예수께서는 행동을 취하십니다. 그분은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장사꾼들을 쫓아내십니다.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주화를 쏟으시고 그 상들을 뒤엎으십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들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시오!” 하고 명령하십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처럼 열성적으로 행동하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다음과 같은 예언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집에 대한 열심이 나를 삼킬 것입니다.” (요한 2:13-17; 시 69:9) 우리 역시 세상적인 경향들이 우리의 숭배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열심히 경계해야 합니다.

7. (ㄱ) 니고데모는 무엇에 자극을 받아 메시아를 찾아옵니까? (ㄴ) 예수께서 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증거하시는 일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게 됩니까?

7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주목할 만한 표징들을 행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믿음을 둡니다. 심지어 산헤드린 즉 유대인의 고등 법원 성원인 니고데모까지도 예수에게 감명을 받아, 더 많이 배우기 위해 밤에 예수께 옵니다. 그 후, 예수와 제자들은 약 8개월 동안 “유대 지방”에 머물면서 전파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침례자 요한이 투옥되자 그들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향합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갈 때 예수께서는 기회를 포착하여 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철저히 증거하십니다. 이 일은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줍니다. 우리 역시 왕국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들에 깨어 있도록 합시다.—요한 2:23; 3:1-22; 4:1-42; 마가 1:14.

갈릴리에서 광범위하게 가르침을 베푸심

8.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무슨 일을 시작하십니까?

8 예수께서는 죽으실 “시간”이 되기 전에, 하늘의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관련하여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시작하시는 봉사의 직무는 유대나 예루살렘에서 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습니다. 그분은 “갈릴리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며 사람들 가운데서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십니다. (마태 4:23)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하늘 왕국이 다가왔습니다”라고 하시는 그분의 도전적인 말씀이 그 지역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마태 4:17) 몇 달 후, 침례자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로부터 직접 듣고 싶어서 예수께 오자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당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보고하십시오. 눈먼 사람이 시력을 얻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일으킴을 받고,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행복합니다.”—누가 7:22, 23.

9. 무리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일로부터 무슨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9 ‘예수에 관한 좋은 소문이 주위 온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가자’—갈릴리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부터—큰 무리가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누가 4:14, 15; 마태 4:24, 25) 그들은 기적에 의한 병 고침 때문만이 아니라 놀라운 가르침 때문에도 그분에게로 옵니다. 그분의 소식은 호소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격려적입니다. (마태 5:1-7:27) 예수의 말씀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고 기쁨을 줍니다. (누가 4:22)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랍니다.’ 성경을 인용하여 권위 있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 7:28, 29; 누가 4:32) 그런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역시 가르치는 기술을 배양하여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0. 나사렛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하지만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 모두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그분의 봉사의 직무 초기에 나사렛에 있는 고향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도 그분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분의 “사람을 끄는 말씀”에 경탄하면서도 기적을 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강력한 일들을 많이 행하시기는커녕 그들의 이기심과 믿음의 결핍을 드러내십니다.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몹시 화가 나서 일어나 예수를 붙잡고 산허리로 내몰아 벼랑으로 끌고 가서 거꾸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안전하게 빠져 나가십니다. 죽으실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누가 4:16-30.

11. (ㄱ)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말을 듣기 위해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긴다는 비난을 받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예수께서 전파하시는 곳에는 종종 종교 지도자들—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등—도 와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와 있는 것은, 듣고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책잡아 덫에 걸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태 12:38; 16:1; 누가 5:17; 6:1, 2) 예를 들면, 기원 31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계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38년 동안 병을 앓아 온 한 남자를 고치십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시고 나도 계속 일합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여, 예수가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와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향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활력을 바쳐 왕국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을 때, 반대자들과 부적절하게 맞대결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요한 5:1-18; 6:1.

12. 예수께서는 갈릴리 구역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도십니까?

12 그 후 1년 반 정도 되는 기간에 예수께서는 대부분의 봉사의 직무를 갈릴리에서만 수행하시고 예루살렘에는 단지 유대인들이 지키는 세 차례의 연례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만 가십니다. 갈릴리에서는 전부 합해서 세 차례의 전파 여행을 하셨는데, 첫 번째 전파 여행은 새로 선택한 4명의 제자와 함께 하셨고, 두 번째 전파 여행은 12사도와 함께 하셨으며, 더 확장된 전파 여행을 하실 때도 역시 그 훈련된 사도들을 보내셨습니다. 갈릴리에서는 참으로 진리에 대한 광범위한 증거가 행해집니다!—마태 4:18-25; 누가 8:1-3; 9:1-6.

유대와 페레아에서 용감하게 증거하심

13, 14. (ㄱ) 어떤 행사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합니까? (ㄴ) 관리들이 예수를 체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때는 기원 32년 가을이고, 예수의 “시간”이 되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합니다. 장막 축제가 가까운 때입니다. 이제 예수의 이부 동생들은 예수에게 “여기서 옮겨 유대로 들어가십시오” 하고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들은 축제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보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이 위험한 일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직 이 축제에 올라가지 않겠다. 나의 정해진 때가 아직 온전히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7:1-8.

14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얼마간 더 머물러 계시다가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하면서 실제로 축제에서 예수를 찾습니다. 축제가 절반이 지났을 때에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용감하게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를 잡으려 하는데, 아마 감옥에 집어넣거나 죽이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게 믿음을 두게 됩니다. 그분을 잡아 오라고 바리새인들이 파견한 관리들까지도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요한 7:9-14, 30-46.

15.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 들어 예수에게 던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예수께서는 뒤이어 어떤 전파 운동을 전개하십니까?

15 예수와 유대인 반대자들 사이의 마찰은, 그분이 축제 기간에 성전에서 아버지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계속됩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예수께서 자신의 인간 이전 존재에 대해 말씀하시자 격노한 유대인들이 돌을 집어 들어 그분에게 던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숨어서 해를 입지 않고 피하십니다. (요한 8:12-59)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밖에 머무르시면서 유대에서 집중적인 증거 운동을 전개하십니다. 70명의 제자를 택하시고 교훈을 베푸신 다음, 구역을 돌도록 둘씩 보내십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사도들을 동반하여 가시려고 하는 모든 곳과 도시로 앞서 갑니다.—누가 10:1-24.

16. 예수께서는 봉헌 축제 때 어떤 위험에서 벗어나시며, 또다시 어떤 일을 하며 바쁘게 보내십니까?

16 기원 32년 겨울에, 예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분은 봉헌 축제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분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성전 주랑을 거닐고 계실 때, 그들은 그분을 에워쌉니다. 또다시 그들은 예수께서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돌을 집어 들어 그분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번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피하십니다. 얼마 후 그분은 길을 가면서 가르치시는데, 이번에는 유대에서 요르단을 건너 페레아 지역에서 도시에서 도시로 그리고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십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믿음을 둡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벗 나사로와 관련된 급한 전갈이 와서 다시 유대로 가시게 됩니다.—누가 13:33; 요한 10:20-42.

17. (ㄱ) 페레아에서 전파하고 계실 때 예수께서는 어떤 급한 전갈을 받으십니까? (ㄴ) 무엇을 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취해야 하는 행동의 목적과 또한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일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까?

17 급한 전갈을 보낸 사람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이며, 그들은 유대 베다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갈을 가지고 온 사람은 “주여, 보십시오! 당신이 애정을 가지고 계신 사람이 병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 병은 죽음에 이를 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이 그것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일부러 자기가 계신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십니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로 갑시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랍비, 바로 최근에 유대 사람들이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지만 예수께서는 남아 있는 ‘낮의 시간’, 다시 말해서 자신의 지상 봉사를 위해 하느님께서 할당해 주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요한 11:1-10.

아무도 무시할 없는 기적

18.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그곳의 상황은 어떠하며, 그분이 도착하신 다음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18 베다니에 도착하자 마르다가 맨 먼저 예수를 맞이하러 나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만일 당신이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뒤이어 마리아와 그들의 집에 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옵니다. 그들은 모두 웁니다. “그를 어디에 뉘어 놓았습니까?” 하고 예수께서 물으십니다. 그들은 “주여,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기념 무덤—입구를 돌로 막아 놓은 동굴—에 도착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치우십시오.”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마르다는 이렇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주여, 나흘이나 되었으니, 지금쯤은 틀림없이 냄새가 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요한 11:17-40.

19. 예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기 전에 공개적으로 기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나사로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치우자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달성되는 일임을 사람들로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런 다음 큰 음성으로 “나사로, 나오시오!” 하고 외치십니다. 나사로는 손발이 여전히 장사할 때 감았던 베로 묶인 채, 얼굴은 천으로 덮인 채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1:41-44.

20. 예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시는 것을 보게 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0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던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예수에게 믿음을 둡니다. 그런가 하면 일어난 일을 바리새인들에게 알려 주러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바리새인들과 수제사장들은 즉시 산헤드린을 긴급하게 소집합니다. 그들은 몹시 당황하며 이렇게 한탄합니다. “이 사람이 많은 표징들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소?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믿음을 둘 것이오.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숭배 장소와 우리 나라 사람들을 빼앗아 갈 것이오.” 하지만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고 온 나라가 멸망되지 않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부터 그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상의합니다.—요한 11:45-53.

21. 나사로를 부활시킨 기적은 무엇의 전주곡이 됩니까?

21 이처럼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늦게 도착하심으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나흘간이나 죽어 있던 사람을 부활시키십니다. 심지어 명망 높은 산헤드린까지도 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을 주목하여 그분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그 기적은 예수의 봉사의 직무가 중요한 전환점에 이르렀음을—“그분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던 시기에서 “그 시간이 온” 때로 바뀌게 되었음을—알려 주는 전주곡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일을 의식하고 계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 예수께서 포도주와 관련된 어머니의 암시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많은 경우 예수께서 반대자들을 대하신 방법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예수께서 나사로의 병에 늦게 대처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 질문]

[12면 삽화]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책임을 돌보는 데 자신의 활력을 바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