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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가시에 잘 대처한 사람들

육체의 가시에 잘 대처한 사람들

육체의 가시에 잘 대처한 사람들

‘나에게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천사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이 나를 계속 때립니다.’—고린도 둘째 12:7.

1. 오늘날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은 끈질기게 계속되는 어떤 시련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까? 하지만 당신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인 오늘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격렬한 반대, 가족 문제, 병, 재정적 염려, 감정적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과 같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고 있습니다. (디모데 둘째 3:1-5) 어떤 나라들에서는 식량 부족과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2, 3. 우리가 직면하는 가시 같은 문제들로 인해 어떤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태도가 어떻게 위험할 수 있습니까?

2 그러한 문제들에 직면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칠 경우에 그러합니다. 잠언 24:10의 이러한 말씀에 유의해 보십시오. “너는 고난의 날에 낙담하였느냐? 너의 힘이 부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시련 때문에 낙담하게 되면, 우리는 절실히 필요한 힘을 빼앗기게 될 수 있으며, 끝까지 인내하려는 우리의 결의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3 낙담하게 되면 우리는 객관적 사고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거나 자기 연민을 느끼게 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는 하느님께 “하필이면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까?” 하고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태도가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그 사람이 가졌던 기쁨과 확신이 침식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이라 하더라도 몹시 낙담하게 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믿음의 훌륭한 싸움”을 싸우는 것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디모데 첫째 6:12.

4, 5. 때때로 우리가 겪는 문제에 사탄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으며,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4 여호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야고보 1:13) 어떤 시험들은 단지 우리가 그분을 충실히 섬기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칩니다. 사실, 여호와를 섬기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대적인 사탄 마귀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인 이 악한 자는 자기에게 남은 짧은 기간 동안,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고린도 둘째 4:4) 사탄은 세계 전역에 있는 우리의 연합된 형제들 전체를 가능한 한 많은 고난으로 괴롭히려고 합니다. (베드로 첫째 5:9) 물론, 사탄이 직접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를 다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비열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를 더욱 약화시키려고 합니다.

5 그렇지만, 사탄과 그의 무기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종들이 사탄의 술책에 대해 모르고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고린도 둘째 2:11)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시련들에 대해 많은 점들을 알려 줍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 성서에서는 “육체의 가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그 표현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시련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여호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결코 우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험이 가시와 같은 이유

6. 바울은 어떤 의미로 “육체의 가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그 가시는 무엇이었을 수 있습니까?

6 극심한 시련을 겪었던 바울은 영감을 받아 이렇게 썼습니다. “나에게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천사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나를 계속 때려 내가 지나치게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12:7) 바울에게 있었던 육체의 가시는 무엇이었습니까? 가시가 살에 깊이 박히면 참으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유적 표현은—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혹은 두 가지 면으로 모두—바울에게 고통을 준 어떤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바울이 눈병이나 다른 어떤 신체적 병약함 때문에 고통을 겪은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시는, 사도로서의 바울의 자격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의 전파 활동과 가르치는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 둘째 10:10-12; 11:5, 6, 13) 그 가시가 무엇이든, 그것은 바울에게 계속 박혀 있었으며, 그가 제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7, 8. (ㄱ) ‘계속 때린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가시들이 무엇이든 그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그 가시가 바울을 계속 때렸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흥미롭게도, 바울이 여기에서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손가락 관절들”에 해당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단어가 마태 26:67에서는 문자적으로, 고린도 첫째 4:11에서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구절들에서, 그 단어는 주먹으로 두들겨 맞는다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종들에 대해 사탄이 품고 있는 극도의 증오심을 생각해 볼 때, 틀림없이 마귀는 가시가 바울을 계속 때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우리가 육체의 가시로 인해 그와 비슷하게 고통을 당할 때 바울의 경우에 그러했던 것처럼 기뻐합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그러한 가시들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아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생명이 그분의 신세계에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곳에서는 가시와 같은 문제들이 다시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놀라운 상을 얻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그분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모범을 제시해 놓으셨으며, 그분의 충실한 종들이 육체의 가시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자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 중에서 몇 사람을 고려해 보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 12:1) 그들이 무엇을 인내하였는지에 대해 묵상한다면, 사탄이 우리를 대항하여 어떤 가시들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음을 우리는 더욱 굳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므비보셋을 괴롭힌 가시들

9, 10. (ㄱ) 므비보셋은 어떻게 육체의 가시를 갖게 되었습니까? (ㄴ) 다윗 왕은 므비보셋에게 어떤 친절을 나타냈으며, 우리는 어떻게 다윗을 본받을 수 있습니까?

9 므비보셋을 고려해 보십시오. 그는 다윗의 벗인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섯 살 때, 아버지 요나단과 할아버지 사울 왕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아이의 유모는 겁에 질렸습니다. 그 여자는 “그를 데리고 [갔으나] ·⁠·⁠·, 도망하려고 허둥대며 달아날 때에, 그가 떨어져 절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둘째 4:4) 므비보셋에게는 그러한 장애가 틀림없이 그가 성장하면서 인내해야 할 가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10 여러 해 후에, 다윗 왕은 요나단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므비보셋에게 사랑의 친절을 나타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돌려주었고, 사울의 수종 지바를 그 땅을 돌보는 사람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다윗은 또한 므비보셋에게 “그대는 항상 내 식탁에서 빵을 먹도록 하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무엘 둘째 9:6-10) 의문의 여지 없이, 다윗이 나타낸 사랑의 친절은 므비보셋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그가 장애 때문에 느끼던 고통을 덜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훌륭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 역시 육체의 가시와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11. 지바는 므비보셋에 대해 무엇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하지만 우리는 그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각주 참조)

11 그 후, 므비보셋은 또 다른 육체의 가시와 맞서 싸워야 하였습니다. 그의 종 지바가 다윗 왕 앞에서 그를 중상하였는데, 그때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하고 있었습니다. 지바는, 므비보셋이 불충성스럽게도 왕권을 차지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 다윗은 지바가 한 중상을 믿었고,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그 거짓말쟁이에게 넘겨 주었습니다!—사무엘 둘째 16:1-4.

12. 므비보셋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그는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이 됩니까?

12 그러나 마침내 다윗을 만나게 된 므비보셋은 실제 있었던 일을 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을 따라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지바가 므비보셋을 속이고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자원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았습니까? 일부분만 바로잡았습니다. 다윗은 그 두 사람이 재산을 나누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때문에 므비보셋에게는 육체의 가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실망하였습니까? 그는 다윗의 결정에 대해 항의하면서, 그 결정이 부당하다고 불평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원하는 대로 겸손하게 따랐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장애와 중상과 실망을 인내함으로 참으로 훌륭한 모범을 남겼습니다.—사무엘 둘째 19:24-30.

느헤미야가 시련에 대처해 나가다

13, 14.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 어떤 가시들을 인내해야 하였습니까?

13 기원전 5세기에 느헤미야가 성벽이 없던 예루살렘 도시에 돌아왔을 때 인내하였던 상징적 가시들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그 도시에 방어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제대로 조직이 되어 있지 않았고 낙담해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불결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권한을 받았지만, 인근 지역의 총독들이 그의 임무를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언짢게 여겨졌”던 것입니다.—느헤미야 2:10.

14 그 타국인 반대자들은 느헤미야가 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기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첩자를 보내어 느헤미야를 낙담시키려고 한 일을 포함하여 그들의 위협과 거짓말과 중상과 협박은 틀림없이 느헤미야에게 지긋지긋한 육체의 가시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러한 적들의 간계에 굴복하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고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을 때, 그 성벽은 여호와께서 느헤미야에게 사랑에 찬 지원을 베풀고 계심을 보여 주는 지속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느헤미야 4:1-12; 6:1-19.

15. 유대인들 가운데 있던 어떤 문제들이 느헤미야를 몹시 괴롭혔습니까?

15 또한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과도 맞서 싸워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어려움들은 여호와와 그 백성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를 몹시 괴롭히는 가시들과 같았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과도한 이자를 가혹하게 받아 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의 가난한 형제들은 빚을 갚고 페르시아에서 부과한 세금을 내기 위해 자기들의 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자녀들을 종으로 팔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5:1-10) 많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있었으며 레위 사람들과 성전을 지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아스돗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느헤미야는 참으로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시들 중 어느 것도 느헤미야를 중단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느님의 의로운 법을 열심히 옹호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거듭거듭 맞서 싸웠습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다른 사람들의 불충실한 행실 때문에 여호와께 드리는 충성스러운 봉사를 단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것을 단호히 물리치게 되기를 바랍니다.—느헤미야 13:10-13, 23-27.

육체의 가시에 잘 대처한 다른 많은 충실한 사람들

16-18. 가정 문제가 어떻게 이삭과 리브가, 한나, 다윗, 호세아를 괴롭혔습니까?

16 성서에는 가시와도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에 잘 대처한 다른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한 가시로 작용한 흔한 문제 한 가지는 가정 문제였습니다. 에서의 두 아내는 에서의 부모인 “이삭리브가에게 영의 비통함의 근원”이었습니다. 리브가는 그 며느리들 때문에 자기의 생명까지도 몹시 싫어하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창세 26:34, 35; 27:46) 또한, 한나에 대해 그리고 그와 경쟁하던 부인인 브닌나가 한나에게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어떻게 “그를 몹시 괴롭혔”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한나는 집에서 은근히 그러한 괴롭힘을 자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가족이 실로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석해 있는 동안에도 공개적으로 한나를 괴롭혔으며, 틀림없이 친족과 벗들이 있는 데서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나의 육체에 가시를 더 깊숙이 박아 넣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습니다.—사무엘 첫째 1:4-7.

17 다윗이 장인인 사울 왕의 광적인 질투심 때문에 인내해야 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엔게디 광야에 있는 동굴들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가파르고 위험한 바위 길을 올라 다녀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불공정은 분명히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다윗이 사울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러 해 동안 도망을 다니며 살아야 하였으며, 그 모든 것은 사울의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사무엘 첫째 24:14, 15; 잠언 27:4.

18 예언자 호세아를 괴롭혔던 가정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아내는 간음을 범하였습니다. 아내가 저지른 부도덕은 틀림없이 가시로 그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그는 아내가 음행을 통해 두 명의 사생아를 낳았을 때 틀림없이 한층 더 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호세아 1:2-9.

19. 어떤 박해가 예언자 미가야에게 괴로움을 주었습니까?

19 또 다른 육체의 가시 가운데는 박해가 있습니다. 예언자 미가야의 경험을 고려해 보십시오. 악한 왕 아합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이 하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믿는 것을 보고, 미가야의 의로운 영혼은 틀림없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 후 미가야가 아합에게, 그 모든 예언자들이 “기만하는 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하자, 그 거짓 예언자들의 지도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는 ‘미가야의 뺨을 쳤’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라못-길르앗을 되찾으려고 벌이는 군사 행동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경고에 대해 아합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두고 감량한 양식을 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열왕 첫째 22:6, 9, 15-17, 23-28) 또한 예레미야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의에 가득 찬 박해자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 상기해 보십시오.—예레미야 20:1-9.

20. 나오미는 어떤 가시들을 인내해야 하였으며, 어떤 상을 받았습니까?

20 육체의 가시처럼 매우 고통스러운 또 다른 상황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은 물론 두 아들과도 사별하는 고통스러운 일을 인내해야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그러한 참담한 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벗들에게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불러 달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겪은 일의 비통함을 반영하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나오미에게 손자를 주심으로 그의 인내에 대한 상을 주셨는데, 그 손자는 메시아로 이어지는 계통의 연결 고리가 되었습니다.—룻 1:3-5, 19-21; 4:13-17; 마태 1:1, 5.

21, 22. 욥은 상실의 고통을 어느 정도로 겪었으며, 그에 대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1 욥이 가축과 종들을 모두 잃은 것에 더해서, 사랑하는 열 명의 자녀마저 갑자기 비명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일순간에 그의 세계가 완전히 붕괴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그러한 재난의 충격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사탄은 병으로 욥을 쳤습니다. 욥은 그 악독한 병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욥 1:13-20; 2:7, 8.

22 그 모든 것이 부족하기라도 한 듯이, 이번에는 비탄과 심한 고통에 휩싸인 욥의 아내가 욥에게 와서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은 욥에게 참으로 심한 아픔을 주는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욥의 세 동무가 욥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그럴듯한 논리로 욥을 공격하면서, 욥이 은밀한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였고 그것이 바로 그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논증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욥의 육체에 가시를 더욱더 깊숙이 찔러 넣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욥이 그러한 혹독한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이유조차 몰랐다는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더욱이 욥은 자신이 과연 살 수 있을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은 죄를 짓지 않았고, 부당하게 하느님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욥 1:22; 2:9, 10; 3:3; 14:13; 30:17) 많은 가시들이 한꺼번에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충절의 행로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격려가 됩니다!

23. 우리가 살펴본 충실한 사람들이 다양한 육체의 가시를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이상 언급한 모범들은 결코 전부 다가 아닙니다. 성서에는 이 밖에도 많은 모범들이 나옵니다. 그러한 충실한 종들 모두는 자신에게 있는 상징적인 가시들과 맞서 싸워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참으로 다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를 포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고통스러운 그 모든 시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으로 사탄을 이겼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것이며,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육체의 가시와도 같은 것들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줄 것입니다.

[각주]

^ 11항 그러한 야심에 찬 계략은 므비보셋처럼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을 것이다. 의문의 여지 없이, 므비보셋은 아버지 요나단이 남긴 충실한 기록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이었는데도, 다윗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택하신 사람임을 겸손하게 인정하였다. (사무엘 첫째 20:12-17) 므비보셋에게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였으며 다윗에게는 충성스러운 벗이었던 요나단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왕권을 획득하려는 야망을 품도록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을 육체의 가시에 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므비보셋과 느헤미야가 인내해야 했던 가시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다양한 육체의 가시를 인내한 남녀들이 남긴 성경에 나오는 모범들 가운데 당신이 특히 감동적이라고 느낀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 질문]

[15면 삽화]

므비보셋은 장애와 중상과 실망에 대처해 나가야 하였다

[16면 삽화]

느헤미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내하였다